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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더기가 된 수능제도

등록일 2014-11-28 02:01 게재일 2014-11-2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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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는 대학입학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줄여서 Bac)가 있다. 우리의 수능이 `암기력 테스트`에 머문 것과는 달리 `Bac`은 `사고력 테스트`이다. Bac이 200년 전통을 이어온 것과는 달리 수능은 정권 바뀔때 마다 달라지고, 해마다 잘못된 문제가 나와 대혼란을 일으킨다. Bac이 50%점만 얻으면 통과되는 절대평가인데, 수능은 점수로 줄을 세우는 상대평가이다.

우리의 수능도 당초 목표는 Bac과 비슷했다.“대학 교육 이수에 필요한 학업 적성을 측정하기 위해 통합교육적으로 고교 교육과정의 수준과 내용에 맞춰 고차적인 사고력을 측정하는 시험”이었다. Bac과 같이 `통합교과서적 소재가 문제에 활용됐고, 암기로는 풀 수 없는 문항`이 상당히 포함됐었다. 그러나 수능은 암기식으로 차츰 변해갔다. EBS 교재를 외우는 수험생들이 늘어났다. 사고력이 아니라 암기력을 시험하는 것으로 변질돼간 것이고, 당초의 목표는 완전히 사라졌다.

우리 민족은 `암기민족`이다. 신라시대 이래 모든 등용시험은 암기력 태스트였다. 책 한 권을 뗀다는 말은 책 한 권을 달달 외웠다는 말이었다. 그 암기전통이 지금까지의 모든 시험에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사고력`을 외쳐도 그것은 그저 `구호`일 뿐이고, 모든 시험은 암기력 테스트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전통적 DNA를 가진 것이다. 우리나라도 논술(述)시험을 전면적으로 도입한 적이 있었다. 사고력을 육성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것도 점점 암기 시험으로 전락했고, 논술과외가 성행했다. “사교육만 부추긴다”는 비판 속에서 상당수의 대학들이 논술시험을 폐지했다.

수능을 정부가 맡아 시행한다는 점에서는 프랑스의 Bac과 같은데, Bac은 논문시험이므로 `출제의 오류`가 없지만 수능에서는 2년 연속 오류출제가 나와 대혼란을 일으켰다. 답이 2개인 문제를 낸 것이다. 출제위원이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니라, `몰라서` 저지른 중대한 실수였다. “무식한 출제위원이 낸 잘못된 문제”라는 비난을 받으며 국제적 망신을 샀다. 그 때문에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사의를 표명하기도 했다. 점수 1점 차이로 수험생의 운명이 바뀌는 수능성적에서 엄청난 혼란을 일으켰으니, 그 책임이 엄중하다. 점수 1점 차이로 인간의 운명이 바뀌는 이 수능제도는 얼마나 가소로운 제도인가. 우리나라 교육의 후진성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현상인데,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그 내막도 모르면서 “한국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한다더라”하며 부러워한다.

이제는 입학생 선발권을 대학에 넘겨줄 때가 됐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가서야 되겠는가. 해마다 죽을 쑤면서 누더기 수능으로 만들어가는 것은 실로 나라망신이다. `정부의 사고력`이 낙제 수준임은 이미 증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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