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은 소련의 공산주의를 정치이념으로 하는 김일성 정권이, 남은 미국의 자유민주주의를 통치이념으로 하는 이승만정권이 세워졌다. 남북합작이 다각도로 시도되었지만, 물과 기름은 결코 섞여들 수 없었고, 분단과 이념갈등과 체제경쟁은 시작되었다. 당시 공산주의 이념은 `실험단계`였다. 현실적으로 이 이론이 실현가능한가에 대한 실험이 막 시작됐지만,`이론`만 보고 맹목적으로 빠져드는 젊은이들이들 사이에 공산주의사상은 일종의 유행병 같았다.
“20대에 공산주의를 모르면 무식한 것이고, 40대 넘어까지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미련한 것”이란 말이 나오면서 공산주의에 대한 회의론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결국 오늘날 공산주의 이론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나, 현실적으로는 실현불가능한 정치이론”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래서 소련도, 중국도 오늘날 `공산주의 원본`을 수정하기에 이르렀다. 공산주의자들이 악덕(惡德)으로 봤던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아직도 공산주의 통치철학이 실패했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세력이 우리나라에는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리고 적화(赤化)통일을 위한 혁명에 일생을 건 세력들이 꾸준히 만들어졌다. 분단 초기부터 북한은 `혁명세력 양성`에 엄청난 투자를 해왔다. 그 실체가 해방 초기의 `남한노동당`이었고, 지금의 RO와 통진당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투자와 노력들이 다 실패로 돌아갔다. 6·25가 끝나면서 남로당은 와해되었고, RO는 지금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고, 통진당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되었으며, 그 정당 소속의 국회의원들은 의원직을 상실했다.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 구축해놓은 `거점`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공식행사때 태극기 게양과 애국가 제창을 거부하고, 운동권 가요를 애국가 대신 부르는 `대한민국 주민등록증을 갖고 있으나, 실제 조국은 북한인 자들`이 자유민주주의 법치국가의 맹점을 파고들어 세력을 형성했고, DJ·노무현정권 시절 최번성기를 구가했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서면서 `서리 맞은 뱀`이 되고 말았다. 암세포들은 다시 지하로 숨어들거나, `위장 정당`을 만들거나, 맹렬히 `희망버스`를 운행할 것이다. `적화통일 세력`에 대한 엄정한 법적 대응이 최선의 해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