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당시 최후의 방어선은 낙동강과 형산강이었다. 백선엽 장군은 낙동강지구를 맡았고, 김석원 장군은 형산강지구를 방어하고 있었는데, 이 두 강은 실로 생명선이었다. 백선엽 장군은 그 때 장병들에게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란 명령을 내려 필사의 각오를 보여주었고, 그 말은 그의 자서전 제목이 됐다.
1951년 맥아더 사령부는 `상륙작전`에 대한 소문을 퍼뜨렸고, 국군 장병들은 “우리가 선봉으로 평양에 진격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미군 전차병들은 “우리도 간다”라고 했으며, “We go”는 유행어가 됐다. 그 무렵 맥아드 장군이 백선엽 부대를 방문했다. 대화 중 백 장군이 together란 단어를 덧붙여 “We go together”라고 말했다. 그 말은 한미동맹의 상징어가 됐다.
전쟁기념관에 있는 백선엽 장군 집무실에는 그때 그려진 포스트가 걸려 있는데, 백장군과 맥아드 장군이 만나는 장면이고, “Ready to fight, tonight?(오늘밤 싸울 준비가 됐느냐)”라는 문장과 함께 영문으로 쓴 한국어 “Kachi kapsida”가 적혀 있다. 리퍼트 주한 미 대사는 피습 당한 뒤 자신의 트위터에 “응원에 저와 제 가족들이 감동했습니다. 한미 동맹 진일보를 위해 최대한 빨리 복귀하겠습니다”라고 영문으로 쓰고, 끝에 한글로 “같이 갑시다”라 썼다.
리퍼트 대사의 피습에 대해 미국내의 여론은 “한미 관계의 균열을 도모한 북한과 남한의 종복세력의 의도는 완전 역효과를 냈다. 야만적이고 비겁한 행동의 결과로 오히려 한미동맹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김기종의 테러를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자의 소행`으로 보고, 국내에서도 리퍼트 대사의 트위트 팔로어가 폭증했다. 한국음식을 좋아하는 친한·지한파 리퍼트 대사에 대한 응원은 그침이 없고, 종북좌파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테러범 김기종씨보다 그의 변호인 황성현의 종북 성향이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황변호사는 김씨의 성균관대 후배로 2010년 김씨의 일본 대사 벽돌공격때도 변호를 맡았고, 북한 김정일 사망때도 자신의 카페에 조의문을 올렸다. “젊은 대장이 좌고우면하지 않고 혈기로 기세 좋게 한반도 영구평화와 자주적 통일민족국가의 길을 걷다가 이 엄중한 시기에 죽음의 길을 갔다”고 썼다. 그리고 그는 “북한의 핵융합이 성공하면, 조선이 세계를 정복하는 것은 불문가지”란 글도 올렸다. 핵무기를 가진 북한이 한반도를 적화통일하고, 전 세계도 정복할 것이란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같이 갑시다”를 모토로 삼아야 하겠지만, 적화통일의 꿈을 버리지 못하는 종북세력과 같이 갈 수는 없는 일이다. 나라를 뒤엎겠다는 세력과 어찌 같이 갈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