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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가지고 장난치는 자들

등록일 2015-04-21 02:01 게재일 2015-04-2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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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한일합방 후 제일 먼저 한 일이 `한국사 왜곡`이었다. 1922년에 발표한 교육시책에 의하면, “먼저 조선사람들이 자신의 일, 역사, 전통을 알지 못하게 하라. 그럼으로써 민족혼, 민족문화를 상실하게 하고 그들 조상의 무위·무능·악행을 들추어내 그것을 과장하여 조선인 후손들에게 가르쳐라. 조선 청년들이 그들의 선조들을 멸시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여 실망과 허무에 빠지게 하라. 그때 일본의 사적, 일본의 문화, 일본의 위대한 인물들을 소개하라.” 그때 `조선사 편찬위원회`가 설치됐는데, 일본 사학자들이 주축이 되고, 한국인으로는 정만조, 유맹, 어윤적, 이능화 등이 위촉됐다. 그 후 `조선사편수회`로 조직을 확대 개편하고, 실무작업을 거쳐 1937년 `조선사` 35권과 부록으로 `조선사료 총간` 20종, `조선사료 집진` 3질을 완성했다. 이 작업에 추가로 동원된 한국인 사학자는 이병도, 신석호, 최남선, 홍희, 구찬서 등이었다.

`조선사`에서 특히 강조한 것은 `당파싸움`이었다. 조선인들은 파당을 지어 싸우고, 반대파를 역적으로 몰아 3족을 멸하고, 게으르고 무식해서 자주적 능력이 없는 열등민족이며, 히틀러가 유대민족을 `지구상에서 없어져야 할 열등민족`이라며 `청소대상`으로 본 것같이 일제도 한민족을 그런 족속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일본은 관용을 베풀어 `충성스러운 천황의 신민`이 될 길을 열어주기 위해 이 역사서를 편찬했다는 점도 부각시켰다.

일제는 한국의 고대사를 철저히 부정했다. “고대조선사는 역사를 끌어올리기 위해 가공된 허구의 역사요, 신화일 뿐이다”라고 했고, “한반도의 남부는 임나일본부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일본의 한국 지배는 침략이 아닌 역사 복원이다”라고 했다. 이 두가지 `방침`때문에 현 아베정권은 `침략`을 부정하고, 사과에 인색하며, 일제의 악행을 합리화할 근거로 삼는다.

태평양전쟁 패전 후 일본은 대대적인 `증거인멸 작전`을 수행했다. `남경대학살``인체실험``독립군 학살`등 많은 증거를 없앴고, 지금도 역사왜곡을 계속하고 있다. 1923년의 관동대지진때 희생된 한국인은 수천명에 달한다고 기술했다가, 최근에는 “희생자 수에 대한 통설은 없다”로 바꿨다. 그러나 일제 잔학성에 대한 증거는 속속 공개되고 있다. 제2차세계대전때 일본군은 미군 포로를 3명을 산 채 불태워 죽였다는 증거자료가 중국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피해국들이 이제 됐다”고 할때까지 일본이 사과하게 하려면 유대인들이 계속 영화를 만들어 널리 보급한 것처럼 일본의 악행을 영화와 다큐멘터리로 대량 만들어서 전파하는 방법뿐이다.

한국과 중국과 미국은 그런 영화를 만들 여력이 있으므로 `일본의 역사왜곡 범죄`와 비인도적 악행을 영상으로 널리 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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