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의 용기가 없으면 홈런도 없다”고 한다. 투수는 강타자 앞에서 `정직한 공`을 뿌리기 어렵다. 맞기 싫은 것이 공통심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의로 4사구를 던져 포수는 서서 공을 잡고, 타자를 걸려보내곤 한다. 그러나 `국민타자`쯤 되는 강타자를 상대할 때는 상황이 다르다. 관중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관중들은 승부보다 강타자의 홈런을 보기 위해 입장표를 산다. 그 기대를 그르치면 대소동이 일어나고, 투수는 두고두고 비난을 받는다. 그 예가 2003년 부산 사직구장에서의 일이다.
2003년 9월 27일 롯데의 투수 가득염(현 두산 코치)은 이승엽과 맞섰다. 그는 `맞기 싫어서`고의로 볼 넷을 던졌다. 야구장은 순간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관중들은 쓰레기를 던졌고, 경기는 중단됐다. 무려 1시간 34분이나 지난 후에야 경기가 속개됐다. 가득염은 “벤치의 지시를 따랐지만, 두 딸이 관중석에서 있었는데, 비겁한 아빠의 모습을 보인 것이 마음 아팠다”고 술회했다. 한편 이정민은 그 해 이승엽에게 56호 홈런을 내줘 `허용투수`란 꼬리표를 달았고, 김원형은 이승엽에 솔로포를 내준 후 `대기록의 희생양`이 됐다. 그것은 비난이 아니고 `용기 있고 정직한 투수`라는 칭찬에 가깝다.
박찬호(42)는 LA 다저스 시절 의연한 공을 던져 홈런을 맞았지만, 관중들과 상대팀으로부터 박수와 감사의 인사를 받았다. `홈런 타자들`이 타이기록으로 팽팽히 맞서 있는 상황에서 고의사구를 던져 한 타자를 골탕먹이는 일을 박찬호는 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의 성가는 더 높았다. 스포츠맨쉽을 정직하게 발휘한 선수라는 칭송이 돌아온 것이었다.
이번에 롯데 벤치와 구승민 투수는 포항에 큰 선물을 주었다. 강타자를 피하지 않고 정면승부를 벌임으로써 400호 홈런을 허용했고, 전국에서 모여든 관중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으며, 포항야구장은 야구사의 한 획을 긋게 되었다. 이승엽의 400호를 축하하는 한편 롯데 측의 용기에도 박수를 보낼만 하다. 스포츠의 감동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