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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취선여(欲取先予)

등록일 2015-06-19 02:01 게재일 2015-06-1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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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대학

전국시대 진나라 대부 지백(智伯)은 꾀가 많았다. 지백은 어떻게 하면 이웃한 작은 나라 구유(仇由)를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먹어치울까, 하는 문제를 고민한다. 그는 구유의 왕에게 사신을 보내, 진나라 왕이 구유의 왕에게 종(鐘)을 보내고자 한다는 말을 전한다. 아울러 종이 들어갈 수 잇을 정도로 길을 넓히라고 요구한다. 구유의 왕은 크게 기뻐한다. 하지만 종이 들어올 수 없는 험난한 지형이 문제였다. 구유의 왕은 신하들과 문제를 상의한다.

작은 나라 구유였지만, 충신은 거기에도 있었다. 모두가 진나라 왕의 선물(膳物)을 받으려는 왕의 결정에 동의하는데, 적장만 (赤章曼) 한 사람이 홀로 반대한다. 그의 논지는 명쾌했다. “자고이래(自古以來)로 큰 나라가 작은 나라에 종을 바친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소국이 대국에게 존경과 복속의 의미로 종을 만들어 바치는 것이 상례(常禮)입니다. 지금 진나라에서 종을 줄 테니 길을 넓히라 함은 종과 함께 진나라 군대가 들어온다는 것을 뜻합니다.”

어리석은 구유의 왕은 크게 분노하며 적장만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적장만은 즉시 가솔(家率)을 데리고 깊은 산중으로 숨어버린다. 지백의 꾀는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강대국이 약소국에게 공짜로 종을 줄 까닭이 있겠는가?! 구유는 간단히 병합된다. 이것은 우리가 `욕취선여`를 말할 때 즐겨 인용하는 고사(古事)다. “얻고자 한다면 먼저 주어라!”

노자는 `도덕경` 제36장에서 이것을 구체화한다. 일컬어 `장욕탈지 필고여지(將欲奪之 必固與之)`라 한다. “장차 그것을 빼앗고자 한다면, 반드시 먼저 그것을 주어라!” 이것은 아주 오랜 지혜이기도 하다. 주고받는 관계에 내재한 순수함을 배제한다면, 어떤 경우라도 적용 가능한 이치다. 요즘은 잠잠한 산업스파이 같은 경우도 좋은 본보기다. 적절한 보상책을 내걸고 경쟁기업의 기밀정보를 빼내는 산업스파이 전략은 `욕취선여`의 기본을 따른 것이다.

엊그제 6월 15일은 `6·15 남북공동선언`이 채택된 지 15주년이 되는 날이다. 해방과 분단, 전쟁과 갈등으로 점철(點綴)된 남북분단의 고착화를 탈피하여 공존공영(共存共榮)을 모색하려는 취지(趣旨)에서 나온 것이다. 그 이후 노무현의 참여정부 시절인 2007년에 `10·4 공동선언`이 나와서 남북의 긴장관계가 완화되는 조짐(兆朕)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정권 교체이후 남북관계는 급속도로 경색(梗塞)되고 긴장관계가 조성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남북 경제협력의 창 (窓) 개성공단마저 가까스로 숨을 쉬고 있는 형편 아닌가?!

현 정권은 틈나는 대로 `통일대박`을 언론에 흘린다. 남북통일이 가져올 엄청난 경제적 효과를 강조하면서 북한의 붕괴(崩壞)나 흡수통일을 말하는 것이다. 남한의 압도적(壓倒的)인 경제력과 한미일 공동방위조약이나 요즘 회자(膾炙)되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등으로 북한은 더욱 움츠리고 있다. 급기야 6월 14일 북한인 미사일 3대를 동해로 발사하기도 하였다. 남북관계의 경색과 대치국면이 장기화할 조짐마저 보이고 있는 것이다.

`통일대박`이 현실화되는 첫 번째 조건은 남북한 상호신뢰 구축(構築)이다. 1989년 베를린 장벽붕괴 이후 당시 서도이칠란트 헬무트 콜 수상은 동베를린의 `노이에스 포룸` 같은 정치세력을 포함하여 온갖 노력을 다해 양국의 신뢰구축에 진력(盡力)한다. 콜은 그 결과를 가지고 영국과 프랑스, 미국과 소련을 설득하는데 성공한다. 1990년 10월 3일 재통일의 쾌거 (快擧) 뒤에는 1969년 이후 일관되게 추진된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이 자리한다. 20년 가까이 진행된 양국의 인적-물적 교류가 사태진전의 기폭제였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수사(修辭)로 들리지 않는, 진정성 있고 실현 가능한 남북관계의 재정립과 평화통일의 길을 `욕취선여`의 오랜 가르침에서 시작하면 어떨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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