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는 강점 초기에 한국의 모든 고대사서를 거두어 산더미 같이 쌓아놓고 불을 질렀다. 반만년 한국사를 없애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천우신조로 삼국유사만은 살아남았다. 이 책을 역사책이 아닌 이야기책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것은 일본 역사학자들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그 이야기책 같은 기록속에 무서운 진실이 숨어 있다는 것을 그들은 간과한 것이다.
경북도가 3세트의 삼국유사 목판을 복원할 계획을 실행하고 있다. 금속활자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목판을 새겨 인출하는 방식으로 책을 만들었다. 그 대표적인 목판이 팔만대장경이다. 몽고족의 침입을 불법의 힘으로 물리치고자 했던 것이고, 해인사 장경각에 보관된 그 목판은 지금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돼 보호받고 있다. 수많은 전화(戰禍)속에서 그 경판이 남아 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조선시대 일본은 이 경판을 몹시 탐냈다. “돈은 달라는 대로 줄 것이니, 이 팔만대장경판을 달라”는 요구를 끊임 없이 했지만, 조선의 임금들은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목판인쇄는 `인쇄의 원조`란 뜻이다. 서예가들이`동일한 서체`를 연마해서 여러 사람이 썼지만 서체는 동일한 목판을 판각했다. 경북도는 8명의 각수를 선발해서 2017년까지 3종의 목판을 완성할 계획이다. 개도 700년과 신도청시대 개막을 기념하기 위한 작업이지만, 이 목판이 국보로 지정되고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일연 선사는 신라 고구려 백제 3국의 일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고조선, 위만조선, 마한, 낙랑국, 가야국, 발해 등 고대국가에 대한 기록도 남겼으니, 중국의 동북공정을 반박하는 자료가 됐다.
삼국유사는 문학적 가치도 높다. 신라의 노래 향가 14수가 전해지는데, 이는 설총이 발명한 이두문자로 기록됐다는 점이 위대하다. 그리고 불교가 전래된 상황과 토속신앙과의 충돌 융화의 과정들이 자세히 기록돼 있으니 불교사의 보석이라 하겠다. 경주 황룡사가 몽고군에 의해 불탈 때 일연 선사는 청도에 있었고, 당연히 그 참화의 현장을 목격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것을 기록하지 않았다. 민족자존심이 망가지는 일을 차마 기록하지 못했을 것이다. 경북도의 삼국유사 목판 복원은 그 민족자존심을 살려내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