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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버스터 쇼` 또 하나의 정치 두통거리

등록일 2016-03-03 02:01 게재일 2016-03-0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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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오후에 시작된 야당의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이 9일만에 가까스로 막을 내렸다. 여야는 지난 2012년 당시 필리버스터를 도입하면서 더 이상 몸싸움이나 폭언·폭설이 없는 국회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말하자면 필리버스터는 선진적인 국회, 토론과 합의에 기초한 국회를 만들기 위해 고안된 장치였던 것이다. 실제로 그 동안 다수당은 단독 법안처리에 대한 부담을 느끼는 모습이었다. 따라서 필리버스터라는 장치가 일정부분 동물국회 추태를 차단한 기여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야당의 필리버스터는 소수 정파의 발언권과 설득 기회를 확대한다는 근본 취지에서 크게 벗어났다. `선진화법`이 그러하듯이, 제아무리 좋은 제도도 일단 기본이 안 된 의사당 안에 들어오면 순식간에 입법생산성을 잡아먹는 괴물이 된다는 점을 여실히 입증한 셈이다. 야당의원들은 쟁점인 `테러방지법` 찬반 중립지대에 있는 국민들을 설득하는데 초점을 맞추지 않고 오직 집토끼를 결집시키거나, 순박한 유권자들을 홀리기 위한 궤변에만 몰두했다.

필리버스터를 통해 나온 주장은 상당 부분이 국회에서 통과시키려는 테러방지법안을 왜곡하고 있다. 발언자들은 마치 국민들을 무차별 감청하고, 일반인의 성생활까지 감시할 것이라는 둥 황당한 논리로 반대 필요성을 강변했다. 법안에 분명히 `국가정보원이 감청을 하려면 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가 영장을 발부해야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는데도 “무차별 감청할 수 있다”고 현혹하는 것은 국민들의 이성을 낮잡아보는 방자한 행위에 다름 아니다. 다음으로는 총선을 앞둔 소속 국회의원들의 선거운동장으로 악용했다는 점이다. 국민을 설득하려는 `진정성`보다는 연단에서 버틴 기록을 깨는데 관심을 쏟았고, 눈물을 흘리면서 측은지심을 유발하는 등 이미지 연출에만 집중했다. 여론조사결과 추이를 살펴보면 필리버스터의 흥행은 야당의 지지자를 결집하는 효과는 보았지만, 산토끼들을 끌어 모으는 효과는 크지 않았음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당내 강경파의 반발을 무릅쓰고 `중단` 결단을 내린 진짜 이유가 바로 이것일 것이다.

필리버스터는 원조인 미국에서도 민주주의 의사결정의 기본원칙인 다수결주의에 위배된다는 비판과 함께 꾸준히 `위헌` 논란에 휩싸여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테러위협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는 시점에, 9.11테러 이후 2001년 김대중정부에서 처음 발의됐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수차례 통과를 호소한 바 있는 `테러방지법` 처리를 놓고 벌인 야당의 `생떼쓰기`식 `필리버스터 쇼`는 중요한 과제를 남겼다. 한도 끝도 없이 지속되고 있는 `불통` 정치의 끝에서, 필리버스터라는 좋은 제도가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정치적 두통거리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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