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향식 공천`을 당론으로 표방해온 공당으로서 당 대표가 공천심사를 받는 것은 결코 낯설거나 부끄러운 모습이 아니다. 일부에서 내놓는 `모욕`이라느니, `굴욕`이라느니 하는 표현은 적절치 못한 것이다. 선거 때만 되면 당원권리와 지역여론 모두 젖혀두고 오직 `승리를 위한 고육책`이라는 핑계로 `컷오프` `낙하산 공천` `전략공천` 등등의 이름으로 `사심공천` `밀실공천`을 자행해온 관행을 끊어내는 것은 한국정치 개혁의 최대 과제라는 인식에 대해 부정할 이유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작금 벌어지고 있는 여야 정당들의 공천정국은 과거의 행태에서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먼저 `컷오프`라는 이름으로 10여명의 현역의원들에게 `공천배제`의 칼날을 휘둘렀다. 친노 핵심 중진을 자른 것을 놓고 `논계작전(論介作戰)`이니, `육참골단(肉斬骨斷)` 의도니 말이 많다. 이어서, 지난 주말 새누리당 1차 공천결과가 불쑥 발표돼 정치권이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친박 핵심인 김태환(구미 갑) 의원이 컷오프 대상자 명단에 올랐다.
새누리당의 1차 공천결과는 컷오프뿐만 아니라, 단수공천자 명단을 함께 담고 있다는 점에서 좀 다르다. 여당이 그동안 줄기차게 제시해온 공천방향이나 룰을 지키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상향식 공천`이 명시돼 있다는 당헌·당규는 어찌 되는 것이며, 누차 강조해오던 `당론`과는 부합하는지 의심이 드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1차 공천결과를 놓고 펼쳐지는 정치적 해석과 유추들은 더불어민주당 `컷오프` 발표 때와 한 치도 다름없는 판박이다.
특히 새누리당의 1차 공천결과를 접한 TK(대구·경북) 정치권의 혼란과 긴장은 극에 달하고 있다. TK지역은 이미 한참 전부터 친박의 분열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혼선을 빚어왔기 때문에 그 충격은 훨씬 더 심하다. 친박 핵심 김태환 의원의 컷오프와 해당지역구의 단수공천 발표로 새누리당의 공천방향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판이 돼버린 것이다. 새누리당의 `상향식 공천` 다짐은 온 국민들을 향한 굳건한 공약이었다. 이제 그 약속을 지킬 것인지 아닌지를 명확히 밝혀야 할 상황이 됐다. 적어도 `공천혁명` 의지를 믿고 새누리당을 지지했던 유권자들에게 최소한의 양심만은 보여주는 것이 옳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