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기존의 새누리당이나 더민주당에 대한 인기가 떨어지고, 새로 생긴 국민의당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 것 정도가 `새로운 국면`이다. 2004년 17대 총선때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 2008년에는 `한반도 대운하`가, 2010년 지방선거때는 `무상급식 논쟁`이 이슈였다. 2012년 19대 총선때는 경제민주화·복지·한미FTA·제주해군기지 등 쟁점이 많았고 “노인들이 투표장에 못 오게 전철역 에스컬레이트를 부숴버리자”라는 `김용민 막말사건`으로 여당이 득을 봤다.
이번 총선에서 이슈가 된 것이 `심판론`이다. 새누리당은 `경제 발목을 잡는 야당 심판`, 더민주당은 `여권의 경제 실정 심판`, 국민의당은 `양당체제 심판`을 들고 나오지만 “지금 누가 누구를 심판하겠다는 것이냐. 다 똑같은 주제들”이라는 여론에 막혀서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한다. 새누리당 강봉균 공동선대위원장이 “돈이 꼭 필요한 부문에 수혈을 하는 한국형 양적 완화”를 들고 나온 것이 그나마 `쟁점`이었다.
김종인 더민주당 대표는 “별 효과 없는 정책. 헌법도 안 읽어봤나” 반격을 했고, 강 위원장은 “세계경제를 모르는 양반”이라 되받았지만, 국민들은 “경제문제는 너무 어려워서….”라며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그 논쟁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모양새다.
국민의 `선거 무관심`이 25%를 넘어섰다는 것은 전적으로 정치권 책임이다. 여야 할 것 없이 계파싸움과 공천갈등으로 시간을 다 보내버렸으니 이슈와 정책을 제대로 준비할 겨를이 없었다. 여당은 친박·비박 싸움, 야당은 당이 갈라지고, 새로 생긴 정당은 이삭 줍기로 교섭단체를 구성하기 바쁘고 이런 와중에 정당의 존재감을 드러낼 이슈를 만들 시간이 없고 `준비 없는 총선`을 치를 수밖에 없게 됐다.
북한이 “청와대와 정부청사를 폭격하겠다”며 가상의 동영상을 유포하고, 대북 경제 제재가 헛점을 보이고 있지만 이를 본격적으로 논쟁거리로 삼는 정당이 없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선거판은 태평천국이다.
`쟁점`이 없으면 `흑색선전`이 난무한다. 특히 선거일에 임박하면 `김대업식 폭로` `막말` `음해`가 등장하는데, 피해자는 미처 해명할 시간이 없다. 유권자의 머릿속에 `나쁜 인상`만 심어진 채 투표가 진행된다.
선거 끝나고 “허위낭설임이 밝혀졌다” 해봐야 아무 소용 없다. “나의 장점을 내세우기보다 상대의 단점을 부각시키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 한다. `선거전문가`들이 내놓는 술수인데, 이 고전적 수법이 아직 힘을 발휘한다.
유권자들이 그 진위를 감별하는 안목을 갖추는 일이 긴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