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우리 문화재는 우리 자존심이다

등록일 2016-04-27 02:01 게재일 2016-04-27 19면
스크랩버튼
간송 전형필은 대표적인 `우리문화유산 지킴이`다. 그는 서울 굴지의 부자였다. 800만평의 토지에 연간 `기와집 150채`를 사고도 남을 곡식을 수확했다. 그는 그 재산을 우리 문화재 보호에 바쳤다. 국보 제68호인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은 당초 도굴꾼이 일본 골동품상에게 1천원(기와집 한 채 값)에 팔았다. 이 거간꾼은 간송에게 넘길 때 2만원을 불렀고, 간송은 두말없이 다주었다.

국보 제70호 훈민정음해례본은 연산군 때 대부분 불태워져 희귀본이 됐는데, 한 소장자가 1천원을 불렀다. 간송은 “이런 보물 중의 보물은 그 값에 살 수 없다”며 1만원을 주었고 그동안의`보관료` 1천원을 더 얹어주었다고 한다. 6·25때는 그 책을 가방에 넣어 피난을 다녔고 밤에는 그 가방을 베개 삼았다. 우리 문화유산을 지켜내기 위해 가산을 탕진하다시피한 이유에 대해 그는 “서화(書畵) 전적(典籍) 고문서와 도예작품 등은 조선의 자존심이기 때문”이라 했다. 국보 12점과 보물 10점, 서울시 지정문화재 4점을 비롯해서 아직 공개되지 않은 수많은 문화재가 간송미술관에 보관돼 있다고 한다.

문화재지킴이운동은 민간에서부터 정부 차원으로 확산돼 가고 있다. 정부는 2012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만들어서 해외로 반출된 우리 문화재에 대한 조사 연구와 환수에 나서고 있다. 서적의 경우에는 그 책에 `소장자의 도장`인 장서인(藏書印)이 찍혀 있어서 그 책이 옮겨다닌 흔적을 알 수 있다. 2014년 영국 캐임브리지대학 도서관에서 조사단은 “서양식 장정을 한 중국책이 있다”는 말을 듣고 조사를 했더니 그 책은 세종대왕의 명을 받아 김종서 정인지 등이 1451년에 완성한 `고려사`였다.

재단은 또 중국 상하이도서관을 조사하면서 세종2년 1420년에 동활자인 경자자(庚子字)로 인쇄한 역사서 `자치통감 강목` 59권을 발견했다. 자치통감은 국내에도 흔하지만 많이 떨어져나가 일부분만 있는데 상하이도서관의 것은 전질 59권이 온전히 남아 있는 유일한 판본이었다. 외국에는 이런 국보급 문화재가 많이 있지만 그들의 인식 부족으로 그 가치를 알지 못해 `천대` 받는 일이 많다. 하루속히 회수해서 제대로 잘 보관해야 하겠다.

일제 때 일본 관리들은 많은 한국 문화재들을 수집했고 패망하자 일부는 가지고 나갔고 일부는 남겨두었다. `임신서기석`은 당시 경주박물관 일본인 관장이 탐을 냈으나 우리 박물관 직원들이 회수했다. 일본인들은 비밀창고를 만들어 문화재들을 보관했으나 그것이 발견돼 전량 되찾았다. 그렇게 일본인 손에 들어갔다가 되돌아온 문화재들을 국립경주박물관이 6월 19일까지 전시한다. 그것은 `우리의 자존심을 되찾은 것`이다. 새로운 감회로 돌아봄직하다.

특별기고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