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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한류`와 번역가 양성

등록일 2016-05-20 02:01 게재일 2016-05-2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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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씨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을 받은 것은 그 절반의 공로가 번역가에 있다. “한국에는 좋은 작품이 많지만 번역이 제대로 안 된다”했고, `한국문학번역원`이 생기기는 했으나 아직은 초창기다. 번역이란 것이 단시일에 완성되는 일이 아니다. 일본이 노벨문학상을 여럿 받는 것은 일찍 번역가를 양성했기 때문이다. 유럽인을 일본에 불러와서 아예 일본인으로 만들어버리는 노력을 기울였다. 한국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할 수 있고, 한국의 풍속 문화 역사 전반을 통달한 `영어권 인물`을 양성하는 것이 선결과제다.

한강씨와 함께 맨부커상 국제부문에서 공동수상한 데버러 스미스(29)씨는 케임브리지대 영문과를 나와 런던대 한국어과에 입학해 석사 박사 과정을 이수했다. 그녀는 21세에 처음 한국어를 접했고, 한국어 번역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운명적으로 한국어에 끌려들었으며 초기에는 거의 독학을 했다. 그리고 런던대에 들어가 전문적인 식견을 넓혔으며, 한국문학번역원의 자문위원으로 있다. 런던대에는 `동양·아프리카 제3세계 문학과`가 개설돼 있는데, 데버러씨는 여기서 `틈새시장`을 노렸고, 한강씨의 시적이고 서정적 문장이 마음에 들어 한씨의 다른 작품도 번역했다. 그녀는 제3세계 문학을 영국에 소개하는 비영리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제3세계`란 말은 다소 모욕적이다. 후진국이라는 의미가 은연중 내포돼 있기 때문이다. 중남미 국가들은 `경제적 제3세계`라 불리우고,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은 `문학적 제3세계`라 불리우는데 한국이 그 속에 포함돼 있다는 것이 여간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어쩌랴. 자업자득이다. TV극이나 K-POP 같은 대중문화는 한류바람을 타고 승승장구하는데, 문학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제3세계에 속한다. 번역가 양성에 소홀한 탓이다.

그러나 낙담할 필요는 없다. 종전까지만 해도 외국 출판사를 찾아가 한국문학 출간을 부탁했고 흔히 거절당했지만, 지금은 해외출판사들이 좋은 작품을 찾아 한국에 오고 있다. 좋은 번역가만 있고 좋은 번역만 있으면 한국문학도 충분히 `문학한류` 바람을 일으킬 준비가 돼 있다. 특히 지금은 인공지능(AI)이 발달해서 `기계적 번역`이 가능하므로 오역의 위험성은 없다. 일본의 한 번역가가 단 한 단어를 오역하는 바람에 자책감을 이기지 못해 자살한 일도 있었다.

데버러씨는 `채식주의자`를 4개월만에 번역했고, 영국 한 출판사를 찾아가 책을 펴냈으며, 맨부커상 심사위원회에 제출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해낸 일이다. 그리고 심사위원장으로부터 “우리는 이 낯설지만 뛰어난 책이 영어로도 완벽하게 제 목소리를 냈다고 느낀다”는 심사평을 얻어냈다. `번역가의 역할`이 얼마나 지대한가를 보여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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