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년간 단 한 번도 준수한 적이 없던 원구성 법정시한을 20대 국회도 결국 어기게 돼 암운(暗雲)이 드리워지고 있다. 여야 3당은 7일에도 의장단 선출문제로 극한 대립을 하면서 20대 국회가 국회의장단이 없는 유령국회로 전락했다. 여야 3당은 한때 호기롭게 협치를 부르짖었지만 협상에서 국회의장과 주요 상임위원장 배분 문제를 놓고 서로 한 발짝도 양보하지 않는 채 각 당의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여야는 원구성 마감 법정시한인 이날 본회의를 열어 국회의장단을 선출할 예정이었으나 끝내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국회의장 선출과 관련 자유투표를 실시하는 방안은 재차 제안했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이 각각 국회의장 후보를 정하면 본회의에서 자유투표를 통해 의장을 선출한 뒤 상임위원장 배분 문제를 논의하자는 주장이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의장단을 구성하면 상임위원장을 선출하자는 단계적 원구성안”이라며 “양당이 후보를 내놓으면 당을 보건 인물을 보건 우리가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더민주는 국민의당의 제안에 공조 입장을 밝히면서 새누리당을 압박했다. 자유투표를 하더라도 국민의당이 새누리당 후보에게는 표를 주지 않을 것이란 판단 아래 제안을 수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여당이 야2당의 제안에 대해 “협상 분위기를 깨려는 야합”이라며 즉각 반발하고 나서 정국은 다시 급속도로 얼어붙는 형국으로 돌아섰다. 새누리당 김도읍 원내 수석부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의장 선출은 관례대로 (먼저 의장 내정자에 대한) 합의 하에 표결처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원내 핵심관계자도 “야당이 표의 우위만 믿고 여당을 압박하는 것은 협상정신과 의회주의를 위협하는 것으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여야 3당이 이날 예정했던 본회의 소집과 국회의장단 선출의 실마리를 풀지 못함에 따라 상임위원회 개편 논의도 원점회귀할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여소야대(與小野大)와 3당 체제라는 새로운 구도로 출발한 20대 국회 역시 임기개시 이후 7일 이내에, 상임위원장단은 최초 집회 이후 3일 이내에 본회의에서 선출하도록 한 법 규정을 위반하는`불법의 전통`을 계속 이어가게 됐다.
여야 3당은 국민들이 극한대립의 양당 체제에 염증을 느껴 내려준 새로운 협치(協治) 정신의 교훈을 벌써 다 까먹은 듯한 모양새다. 상대방의 양보만 강요하는 정치로는 결코 협치의 이상을 구현할 수 없다. 진정 국민을 두려워한다면 여야 정치권은 무한대결의 구태를 하루빨리 벗고, 배려와 타협의 새 정치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국민들 사이에 급속도로 번지고 있는 정치 불신과 실망을 더이상 덧내지 말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