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2월부터 대구의 한 아동요양시설에서 살고 있는 김모(7)군은 같은 해 10월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6개월분 건강보험료 10만원을 납부하라는 독촉장을 받았다. 부모의 폭력에 시달리다 시설에 살게 된 김 군은 부모의 명의로 체납된 보험료까지 내야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에 김 군을 보호하던 요양시설 관계자가 당국에 수차례 민원신청을 했으나 돌아온 답변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통보뿐이었다.
경산시의 한 그룹 홈에서도 가정형편이 어려워 시설에 맡겨졌던 오누이(누나13·동생7세)에게 60여만 원의 건강보험료 납부 독촉고지서가 수차례 발부된 적이 있다. 다행히 오누이가 가정으로 돌아가면서 더 이상 독촉에 시달리지 않게 됐지만, 현 제도상으로는 제2, 제3의 사례가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오누이가 머물던 보호시설에서는 “건보료 문제는 당국에 민원을 넣어도 해결이 되지 않는 고질적인 문제”라고 털어놓고 있다.
시설아동에게 부과되는 미납 건강보험료 독촉고지는 성인이 될 때까지 족쇄로 남아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에게 빚으로 떠맡겨지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9월 건강보험공단이 세월호 사건으로 고아가 된 미성년자에게 건강보험료를 부과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이후 관련법이 개정됐지만, 아동보호시설에 거주하는 미성년자는 이 법에 해당되지 않아 이러한 문제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아동 의료복지단체 관계자들은 전국적으로 시설에 있는 많은 아이들이 같은 고통을 겪고 있기 때문에 아동들에게 건보료 부과 자체가 되지 않도록 복지서비스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건보공단은 구체적인 법령이 없기 때문에 이 같은 민원을 당장 해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공단 관계자는 “제도개선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공단이 나설 방법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불우한 환경에 처한 국민들을 섬세하게 배려하고 보살피는 제도가 있는지 여부에 따라 선진국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시대가 된 지 이미 오래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부모를 잃거나, 부모로부터 돌봄을 받지 못하는 난관에 처한 아동들에게 건보료를 청구하고 부모들의 체납금까지 독촉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의 횡포다. 악용사례를 막을 수 있는 장치를 수반한 관련법 보완 개정이 시급하다. 촘촘한 복지망만이 따뜻한 사회를 구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