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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독도편입` 허구성 또 입증

등록일 2016-08-17 02:01 게재일 2016-08-1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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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한국을 강제합병하기 전인 1905년 시마네(島根)현이 독도를 편입했다는 기존 주장과 배치되는 결정적인 내부문서가 발견됐다.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장은 일본의`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명칭) 자료관`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시마네현의 내부 극비문서 2장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김 소장이 입수해 본지에 알린 문서에는 시마네현청과 현에 속한 오키섬 촌장이 주고받은 질의응답이 담겨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시마네현청이 1939년 9월15일 먼저 오키섬 촌장에게 “독도의 편입에 대해 묻겠다”며 편입 시기·편입 방식에 대해 질문하는 서한을 보냈다. 그러자 오키섬 촌장은 1939년 9월24일 문서 326호를 통해 “다케시마는 쇼와14년(1939년) 4월24일 편입했다”며 “촌 의회를 통해 만장일치로 결정했다”고 답변하고 있다. 이는 일본 측이 주장해온 독도편입 시기와 34년이나 차이가 나는 문서로서 그 시점이 대한제국 주권찬탈 이후임을 명백히 입증한다.

일본은 그 동안 1905년 시마네현 고시 40호를 통해 독도 영유권을 확보했다고 주장해왔다. 일본은 독도가 한일 강제합병(1910년) 이전에 편입된 만큼, `무주지선점론(無主地先占論)`에 입각해, 국제법적으로 정당한 영토편입이라고 줄기차게 강변해오고 있다. 즉 1945년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한국에 반환해야 하는 영토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논리다.

일본의 기존주장 자체만 하더라도 갖가지 모순과 무리한 궤변임이 입증된다. 우선 독도가 주인 없는 땅이었다는 전제부터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삼국사기·삼국유사에 신라장수 이사부가 우산국을 점령한 역사기록이 뚜렷하다. 특히 울릉도에 군수를 파견한 1900년 대한제국 칙령 41호는 당시의 독도 명칭인 `돌섬`의 한자식 표기 `석도(石島)`를 관할구역으로 명시하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1904년 러일 전쟁 발발 당시 국제법은 주권이 없는 영토인 무주지를 편입하려면 주변국에 사전조회를 거쳐 국제적으로 고시하도록 돼 있었다. 그런데 시마네현 고시는 내부문서를 상징하는 `회람` 표시가 되어 있어 자기들끼리 돌려본 문서에 지나지 않음을 증명한다. 내부문서에 이웃나라 땅을 `우리 땅으로 하기로 했다`고 적어 돌린 기록을 가지고 자기네 영토라고 욱대기는 노릇은 개그프로에도 나오기 힘든 해괴한 망동에 불과하다.

이번에 발견된 내부문서 역시 내부적으로 오간 서류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새롭게 발견된 문서에는 저들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결정했다는 날짜 1939년 4월 24일은 기존 1905년 설이 엉터리임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침략의 역사를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멀쩡한 남의 나라 땅을 침탈하려는 일본의 도발행위는 즉각 종식돼야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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