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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천상륙작전`의 의미

등록일 2016-08-23 02:01 게재일 2016-08-2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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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새벽 3시 30분, 북한은 특수부대원 600여 명을 실은 1천t급 해군전단을 부산으로 보냈다. 우리 해군의 백두산함(PC-701)과의 해전이 개시됐는데 다음날 새벽 1시 38분에 북한함이 격침됐다. 대한민국 해군의 첫 전과였다. 북한은 탱크부대로 38선을 돌파하고 일본이나 미국에서 오는 물자와 병력을 저지하기 위해 해군전단을 부산에 보낸 것이었다. 북한 전함 격침과 낙동강·형산강 저지선에 의해 맥아더 사령부는 인천상륙작전을 준비할 시간을 벌었다.

영화평론계에도 종북좌파가 있다. 북한의 이미지에 흠집이 가는 6·25관련 영화에는 날을 세운다. `국제시장`에 대해서는 “술술 흘러간다. 그러나 술술 받아들이겠다는 것은 아니다”라 했다. `연평해전`에 대해서는 “130분 예비군 안보훈련용”으로 깎아내렸다. `인천상륙작전`에는 개거품을 물고 짖어댔다. “2016년판 똘이장군 이야기” “멸공의 촛불” “시대가 뒤로 가니 영화도 역행한다” “반공주의와 영웅주의로 범벅된 맥아더에 바치는 헌사”라며, 논평할 가치조차 없지만 “리암 니슨 이름 봐서 별 한개 추가”라면서, 평점 10점 만점에 2~4점을 주었다. 3류 액션물에도 안 주는 점수다.

인천상륙작전은 인민군이 압록강 너머로 밀려간 `패전의 분기점`이었으니 북한으로서는 `원한의 일격`이다.

종북 평론가들은 그 `북의 심기`를 읽고 `알아서 기었거나` `지령`을 받았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 국민정서는 이런 종북들에는 보조를 맞춰주지 않는다. 6·25를 소재로 한 영화는 다 성공했다. `태극기 휘날리며` `포화속으로` 등을 20대가 즐겨 봤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은 그동안 일반에 알려지지 않았던 비화(秘話)가 소개되었다. 작전을 성공으로 이끈 비밀첩보부대의 활약상이 묘사돼 있다. 우리 해군 첩보부대가 작전명 `X-RAY`를 성공시킨 것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그 외에도 이름 없고 군번 없는 `민간인 신분`의 대원들도 적지 않았다. 지금 생존해 있는 대원들도 있는데 그들은 아직도 자신의 신분과 역할을 숨긴 채 `잊혀진 사람`으로 지낸다.

1950년 8월 13일 우리 해군은 17명의 첩보부대를 만들었고 인천에 잠입한 뒤 북한군의 해안포대 위치와 수, 병력 배치 현황, 상륙 지점의 지형 등의 정보를 수집해 맥아더 사령부에 보냈다. 이 때 캘로부대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미 극동사령부 주한 연락처(KLO)인데 한국인으로 구성된 대북 첩보부대였다. 이 대원들은 적 치하에 있던 팔미도를 탈환해 등대의 불을 밝힘으로써 맥아더 함대가 들어올 길을 열어주었다. `인천상륙작전`은 큰 공을 세우고도 이름 없이 산화한 열사들에게 바치는 헌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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