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11조원으로 편성된 이번 추경 예산안은 긴급하고도 중요한 성격을 갖고 있다. 조선·해운산업의 구조조정으로 악화되는 민생을 지체 없이 구해야 하는 절박함 때문이다. 이번 추경은 구조조정과 민생안정에 각각 1조9천억·지역경제활성화 2조3천억·지방재정보상 3조7천억·국가채무상환 1조2천억원 등으로 그 내용에서 한가로운 것이 하나도 없다. 추경 예산은 중환자에게 투여하는 특수영양제처럼 투입시기를 놓치면 효력을 보지 못한다.
국회는 이 같은 시급성을 인정하고, 지난 12일 정세균 국회의장 주재로 3당 원내대표 회의를 열어 22일까지 반드시 추경예산안을 처리키로 합의했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이 갑자기 전 경제부총리인 최경환 의원·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비서관·홍기택 전 산업은행장 등의 구조조정청문회 증인출석을 조건으로 내걸어 추경 처리를 미루고 있다. 발목잡기·고리걸기·바꿔먹기 구태정치 고질병이 또다시 도진 것이다.
예산정책처 자료에 따르면, 이번 추경안이 여야 간 정쟁으로 끝내 무산될 경우 최대 7만3천개의 일자리와 0.318%포인트의 성장률 상승효과가 사라지게 된다. 서둘러 추경안 처리에 합의한다고 해도 계수조정 등 시간이 필요해 내년도 본 예산안에 대한 정부안의 계수조정이 지연되는 도미노현상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구습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이번 추경 샅바싸움을 보면서 20대 국회가 또다시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는 한심한 불임국회로 전락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여소야대(與小野大) 구조로 바뀐 권력지형과 내년 말 대선을 의식한 선명성 경쟁, 그리고 한 치도 진화하지 않은 정치인들의 의식 등 모두가 걱정거리다.
민주주의 국가에는 늘 여야가 있기 마련이니, 일정수준 정치적 힘겨루기는 불가피할 것이다. 그러나 민생이 걸린 문제를 볼모로 여야가 극한다툼을 벌이는 것은 큰 잘못이다.
집권당 골탕 먹이는 일에 빠져 곤경에 처한 민초들의 삶을 외면하는 야당정치는 혁신돼야 한다.
고래싸움에 등터지는 억울한 새우들을 언제까지 이렇게 무시하고 방치할 건가.
막강한 권력만 누리고 책임은 아무것도 지지 않는, 3류 정치를 지속할 요량이 아니라면 `민생정치`는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할 최고의 가치다. 생산성 높은 선진정치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