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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 아니면 재건축이라도 해야

등록일 2016-09-01 02:01 게재일 2016-09-0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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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유적 발굴 복원을 두고 한 중앙지가 시리즈로 비난하고 있다. 정부가 하는 일에 발목 한 번 제대로 걸어볼 모양이다. 경주를 다녀온 전문가들 마다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제대로 고증할 수 없는 황룡사 9층 목탑의 모형을 만들어 전시한다는 것부터 역사 왜곡”이라며 개탄한다고 썼다. 경주는 거의 전역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돼 있는데 `건축물의 원형을 심하게 훼손할 경우` 등재가 취소될 수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런데 그 `원형`을 아무도 모를 경우 `훼손` 여부를 어떻게 판단하는가? `모형`을 가지고 시비 거는 것은 또 무슨 억하심정인가.

가령 황룡사 9층 목탑의 경우 `당초의 설계도`가 남아 있을 리 없고, 고려 말 몽고군에 의해 완전 소실될 때까지 여러 차례 벼락을 맞아 보수 혹은 재정비했고, 사진이 없던 시절이라 솔거 같은 사실화가가 그린 그림은 있을 수 있지만, 여러 차례의 전화(戰禍)로 불타 그 또한 없어졌으니 그 원형을 영영 알 길이 없다. 그러니 “고증할 자료가 제대로 남아 있지 않은 고건축물은 영원히 복원 혹은 재건축할 수 없다”는 논리가 된다. `삼국유사`에는 건축 초기의 과정이 비교적 자세히 기록돼 있는데, 그 자료에 의지해서 유추하거나 상상력을 동원해서 재건축하는 것을 `역사왜곡`이라 한다면 “설계도 없는 고건축물의 복원 혹은 재건축은 영영 불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천마총의 일부를 유물전시관으로 개조한 것은 결정적 유적 훼손이고 심각한 역사왜곡이다. 그런데 유네스코는 이를 문제 삼지 않았고 “잘못됐다”는 소리도 없다. 동궁·월지가 지금의 모습으로 정비되기 전 조선시대에는 `안압지`였고, 아주 엉뚱한 장소에 `임해전`이란 건물이 지어졌다. 그 건물은 `신라 양식`이 아니라 `조선시대 건물`이었고, 지금 그 집은 황성공원 궁도장에 옮겨져 있다. 이것은 심각한 역사왜곡이었지만 아무도 비난하지 않았다.

신라 35대 경덕왕 때 지어진 월정교는 원효대사와 요석공주, 그리고 설총의 일화가 스며 있는`로맨틱한 다리`이고, 왕은 당시 중국의 `지붕 있는 다리`를 본받아 재건축했다. 당초에는 소박한 외나무다리였다니 그렇다면 경덕왕은 월정교를 호화판으로 지어 심각한 역사왜곡을 한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이를 두고 시비를 걸지 않았다. 그것은 `역사발전`이었다. 한 역사학자는 “월정교 문루가 월성보다 높지 않을까” 걱정하는데 그것은 현장에 한 번도 와보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상상만으로 “문제 있다” 하는 것은 웃음거리만 될 뿐이다.

신라왕경 복원·정비사업에는 15명의 전문가들이 자문을 한다. 역사학자, 고고학자, 건축가, 조경사, 도시계획 전문가, 보존과학자 등이다. 이들이 바보여서 복원·정비사업에 참여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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