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2 경주 지진으로 전통 한옥이 지진에 매우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북도에 따르면 경주지역의 목조 건축물 2만2천500여 채 가운데 이번 지진으로 인한 피해는 전통한옥이 밀집되어 있는 황남동과 인왕동 한옥지구에서 2천23건, 피해액만 35억5천만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대부분 기와가 파손되는 피해였고, 다음은 벽체 균열·담장 파손 등이었다.
이번 지진으로 경주에서 유달리 피해가 많았던 것은 바로 `고도보존법`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고도보존법`은 신라 천년 고도인 경주를 비롯해 부여·공주·익산 등에 적용된다. 지난 2011년에 제정된 이 법은 건물의 신축과 증·개축, 나무의 식재나 벌채 등 각종 개발행위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경주시는 황남동과 인왕동 정비구역에 대해 고도보존법에 따라 한옥 신축과 개축, 한옥건축양식 수선 등에 보조금까지 지급하며 한옥 건축을 장려해왔다. 경주에서 기와지붕을 얹은 한옥은 1만2천여 채를 넘는다. 한옥은 지붕에 기와·목재·흙 등을 얹어 하중이 많이 나가기 때문에 건물이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큰 피해가 날 수 있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번 지진에 따른 정부의 피해지원 정책에도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국민안전처 지침에는 전파 또는 반파된 주택에만 복구비의 일부를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이 기준대로면 경주지역 한옥 피해의 대부분이 기왓장이 떨어지거나 벽체에 금이 가는 정도여서 피해보상을 받을 수 없다.
고도보존법에도 지진이나 태풍 등의 재난으로 인한 피해보상에 대한 규정은 아예 마련돼 있지 않다. 결국 경주시민들 사이에는 고도보존법으로 인해 사유재산권 침해 등의 불이익을 받는 것도 모자라 전통문화를 개인이 유지 관리하는 책임까지 떠맡고 있다는 불만이 상존해 있다.
한옥은 자체 피해도 문제지만 한옥건축양식으로 지어진 고층건물의 경우 지진에 따른 기왓장 추락으로 인한 안전사고 위험이 높다. 건축사들은 기와의 무게를 가볍게 하고 단단하게 고정할 수 있는 현대건축공법을 도입하는 방안을 권하고 있다. 전통양식은 보존돼야 한다. 그러나 이미 발생 가능성이 한결 높아진 지진 같은 천재지변을 감안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보존과 안전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는 확실한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그 어떤 가치도 국민의 인명과 재산의 안전을 우선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