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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손을 잡아주어야 한다

등록일 2016-09-22 02:01 게재일 2016-09-2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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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1월 4일 서울 명동에 대만 대사관이 개설되고, 장개석 총통과 박정희 대통령이 상호 방문을 한다.

대만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고, 반공친미로 나아가니, 정치이념에서 한국과 동일하다. 이때부터 양국은 항공·무역·문화·항공운수 등에서 협정을 맺어 활발히 교류한다. 그러나 그로부터 44년이 흐른 후 양국 사이에는 `장벽`이 놓여진다. 1971년 중공이 유엔에 가입한 것이다. 대만은 이때 유엔에서 배제된다. 중공이 “하나의 중국”을 고집한 탓이다. 중공의 유엔 가입을 승인했던 미국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한국 등에 대해 대만은 단교를 선언한다.

1992년은 `운명적인 해`였다. 대만은 중국과`92공식`이라는 `하나의 중국 조약`을 맺고 `공산독재국가와 자유민주국가`가 불안한 `동거`를 시작했다. 그 해 한국은 중공과 국교를 연다. 한국은 “대만과의 국교를 존속하겠다” 했지만 중공은 “중국은 하나다. 대만도 중국이다. 외교권은 중국에 있다”는 고집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대만과 단교하고, 대만 대사관은 1992년 8월 23일 그 깃발을 내리며, 국내에 있는 대만 정부의 재산은 중국에 넘겨진다.

`힘에 좌우되는 유엔에 대한 실망감`과 금석맹약을 깨버린 `한국에 대한 배신감`에 대만은 치를 떨었다. 그 `아픔`은 우리도 경험해봤다. 1910년 한일병탄 후 외교권을 뺏긴 대한민국은 일본에 의존해서 연명할 수밖에 없었다. 헤이그 세계평화회의장에 입장조차 못하고 우리의 탄원을 적은 유인물을 언론사에 뿌렸지만, 일본의 방해때문에 제대로 보도되지도 못했다. 우리는 누구보다` 대만의 고통`을 잘 알지만 힘의 논리에 좌우되는 국제정치는 냉혹하기만 했다.

국제관계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국익에 따라 조변석개(朝變夕改)한다. 지금 대만과 중국의 `불안한 동거`에 금이 간다. 대만독립을 추구하는 민진당이 집권했기 때문이다. 중국에 강점된 티베트, 중국에 귀속된 홍콩, 92공식에 매여 있는 대만, 국제재판에서 맞선 필리핀, 남중국해 문제로 대립하는 미국, 영토주권을 놓고 갈등하는 일본, 안보를 간섭당하는 한국, 이런 나라들이 중국과 척을 진다. 최근 시진핑 주석의 퇴진을 요구하는 글이 미국의 인터넷 매체에 올랐고 중국까지 흘러갔다. “시 주석은 모택동시대의 권위주의로 회귀해 민생에 해를 끼친다”는 내용이다.

지금 대만 민진당 정부가 곤경에 있다. 도와줄 손이 필요하다. “과거를 묻지 말고, 다시 시작합시다” 우리가 손을 내밀 때다. 구미시가 대만의 공업도시 도원시와 우호도시 결연을 맺은 일이나 대구시가 자매도시인 대만 타이베이를 방문해 관광교류를 논의한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이념과 체제가 동일한 나라끼리는 결코 멀어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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