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명예혁명이라는 모습으로 분출되고 있는 촛불시위의 본뜻은 단지 `박근혜 대통령 하야`에 머물지 않는다. 국민들의 분기탱천은 그동안 수없이 거듭해온 아우성에도 끄떡없는 위정자들과 정치권의 오만방자한 모습을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명징한 신호로 먼저 읽어야 맞다. `최순실 게이트`가 발생한 이후 정치권이 취해온 언행들은 민심의 깊숙한 곳에 여전히 닿지 않고 있다.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을 호가호위해온 친박 핵심들의 사수(死守) 뻗대기에 발목이 잡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시간만 허비하고 있다. 촛불 민심이 강토를 뒤흔들고 있는데도 친박 골수들은 `충성` 완장을 차고 메아리 없는 `의리`만을 외친다. 보수주의 사상과 나라를 구하겠다고 민심을 따라나선 비박들에게 `배신`의 빨간 딱지를 붙여대는 그들의 행위는 무던히도 안타깝다.
누가 뭐래도 김무성 전 대표가 스스로의 책임을 인정하면서 선언한 `대선 불출마`는 신선하다. 김 전 대표는 “박근혜 정부 출범을 담당했던 사람, 새누리당 전 대표로서 저부터 책임지고 내려놓겠다”며 “보수의 썩은 환부를 도려내고 합리적인 보수 재탄생의 밀알이 되고자 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표가 앞으로도 사심 없이 원칙을 갖고 목소리를 낸다면 그의 용단은 사태해결의 새로운 동력으로 작동할 것이다.
소위 `대권주자`라고 일컬어지는 여야 유력 정치인들과 정당들의 모습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그들은 작금의 민심을 형편없이 오독(誤讀)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국민들은 `박근혜 하야`를 외치지만 그 속마음에는 이번에야 말로 썩어빠진 정치, 구태의연한 정치문화, 권위주의에 찌든 권력층이 변화해야 한다는 절박한 갈망이 작동하고 있다. 누군가의 대권가도에 큰길을 닦아주려는 의사란 티끌만큼도 존재하지는 않는다.
100만, 200만을 헤아리는 저 뜨거운 열정 한복판에 마그마처럼 들끓는 `정치개혁`을 참마음으로 읽어내지 못한다면, 이 나라 정치인 그 누구도 더 이상 온존하기 힘들 것이다. 촛불을 든 국민들의 경고는 엄중하고 또 엄중하다. 5차 촛불집회 무대에 나서 `상록수` `아침이슬`을 선창한 가수 양희은의 “우리가 해결하고 청산해야 할 것이 많다. 단지 대통령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다.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는 말은 구구절절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