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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말고는 `정경유착` 끊을 길 없다

등록일 2016-12-08 02:01 게재일 2016-12-0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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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총수 9명이 증인으로 한 자리에 선 6일 국회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국정조사 1차 청문회는 정경유착으로 얼룩진 대한민국의 추한 민낯을 28년 만에 다시 드러냈다. 기시감을 느끼게 하는 청문회 내내 펼쳐진 국회의원들의 원맨쇼 질문이나 `대가성`혐의를 한사코 비켜가려는 총수들의 작위적인 눌변 모두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날 청문회는 박근혜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재단 기금출연을 전제로 대기업 총수들과의 독대를 통해 어떤 혜택이나 대가를 약속했느냐가 핵심이었다. 증인들의 답변 사이사이에 드러난 몇몇 대목에 되풀이되는 비극적 사태의 핵심이 있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의 “정부 요청이 있으면 기업이 거절하기 힘든 건 한국적 현실”이라는 답변은 진실을 관통한다.

이론적으로는 경제인들이 권부의 부당한 요구에 당당히 거절하고 맞서야 맞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어림없는 일이다. 대기업 회장님들은 찾아온 언론인은 앉아서 맞아도 되지만 국세청에서 찾아오면 일어서서 만나야 한단다. 그런데 검찰청에서 찾아오면 출입문 앞까지 나가서 만나야 된다는 말이 있다. 검찰청 언저리에서는 기업 총수 누구라도 털면 최소한 2년형은 너끈히 나온다는 말도 나돈다.

권력과 유착하여 반대급부를 미끼로 비정상적인 특혜특권을 탐닉하는 경제인들의 행태는 분명 근절돼야 한다. 하지만 인·허가권과 검찰권을 틀어쥔 권부의 말을 거절할 방법이 없는 현실 속에서 기업인들만 잡도리하는 일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이다. 아무리 수상한 요구라 할지라도 `대통령의 뜻`이라는 꼬리표가 달린 요청은 비토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칼자루를 쥔 절대 권력자가 내민 카드를 어느 기업가가 감히 밀쳐낼 수 있을까. `5리를 벌기 위해 10리길을 가는`특성을 지닌 장사꾼에게, 어쩌면 사업상 큰 손실을 끼치거나 아예 문을 닫게 만들 수도 있는 권력자의 요구를 외면했어야 옳았다고 몰아치는 것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인기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기업이 지배구조와 경영을 투명하고 선진화해 비선 실세의 압력에 당당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권력이 검찰과 국세청을 자의적으로 동원할 수 없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 정부가 틀어쥐고 있는 수많은 인·허가권에 대한 규제 개혁도 필요하다. 기업의 약점을 잡고 갖은 청탁을 하는 국회의원들의 행태도 함께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제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제왕적 대통령제와 중앙집권적 권력구조를 그냥 두고는 절대로 풀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개헌을 통해 권력을 분산하지 않는 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옷을 갈아입지 않는 한 이 처절한 참상은 반복될 개연성이 여전히 높다. 권력분산형 `개헌`의 가치를 다시 한 번 눈여겨보아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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