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불초(不肖)를 악덕으로 보았다. `불초소생`이라 하면 부모를 닮지 못한 자식이란 뜻으로 겸양의 말이다. 부모와 스승을 그대로 본받는 `복사판 자식·제자`가 미덕이었다. 그런 복사판 교육은 법학에는 지금도 유용하다. 법률이란 잘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과서를 그대로 외우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예술이나 과학 쪽으로 가면 사정은 전혀 딴판이다. 불초가 미덕이다. 좀 다르게, 더 다르게 생각하고, 새로운 방법·새로운 결과를 내는 `기존의 것을 무너뜨리는` 혁신이 미덕이다. 창의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말이다.
왕조시대의 과거(科擧)제도에도 암기와 창의가 공존했다. 명경과는 4서3경을 깡그리 외워야 하지만 진사과는 시문(詩文)을 시험했다. 시 짓기는 창의력·상상력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대과(大科)에 올라가면 시·부·송·책이 부과되었다. 현안 국가적 과제를 놓고 대책을 묻는 시험은 왕이 직접 출제를 했고, 가장 뛰어난 대책을 낸 선비가 장원급제를 했다. 세종대왕은 이런 인재를 집현전에 영입해 R&D 업무를 맡겼다. 이것이 세종시대의 문화융성을 이뤄낸 힘이다. 그런데 지금의 교육은 세종시대보다 훨씬 뒤떨어진다. 무사안일한 교수들 탓이다.
그러나 서울대 교수 15명이 대오각성, `창의성 교육을 위한 교수모임`을 결성했다. “새롭고 독창적인 것을 생각해내는 능력은 교육을 통해 훈련하고 기를 수 있다”하고, 정답이 없고, 길이 없는 길을 갈 방법을 생각하는 수업을 진행하자고 했다. 남을 모방하는 인재가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로 새로운 산업에 활력을 불어 넣는 창의성 있는 인재가 국가 발전에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창의성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 루트번스타인 미시간주립대 교수는 “노벨상 수상자의 학교 성적은`보통`이고, IQ도 `평범`이었다”고 했다. 학교성적과 업적은 관련성이 적다는 말이다. `판박이 학생`은 성적은 좋지만 창의력은 낙제여서 그런 사람에 기대할 것은 없다. 아인슈타인은 시험성적은 형편 없는데, 바이올린 연주자였다. 창의성을 발휘할 예체능 취미 한 두개는 가지고 있어야 그것이 `창의력의 샘`구실을 한다. 왕조시대에 문학이 시험과목으로 들어간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