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정유라`후폭풍이 대학에 몰아친다. 오랜 관행이 `범죄행위`로 돌변한다. 1972년 `체육특기생`제도가 생겼다. “한 가지만 탁월하게 잘 해도 먹고살 수 있게 하자”는 취지였다. 이 제도를 잘 활용한 것이 대학이었다. 탁월한 선수·세계적인 선수들은 대학 홍보에 좋은 소재가 된다. 선수 또한 “나는 어느 대학 출신”이란 명예를 기진다. `대졸의 학력을 가진 자`란 자부심도 누리니, 실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계약`이다. 강의에 출석 안 하고, 시험 안 보고, 과제물 안 내도 학교에서는 `학점`을 주어서 졸업시킨다.
스포츠와 국격(國格)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각종 국제대회에서는 `국가별 순위`가 매겨지는데 그것이 국격을 가리는 기준이 된다. 한국과 북한의 격차가 너무 벌어지는 것을 두고 우리는 자부심을 느끼고, 세계도 북한을 `불쌍한 나라·후진국`으로 본다. 그래서 엘리트 선수·스포츠 스타들이 각광을 받고, 두둑한 격려금도 받고, 취업도 잘 되고, 외국 유명 팀에 뽑혀가면 외화 획득에 국위선양까지 한다. 이처럼 `엘리트 스포츠`가 중시되니 선수들은 비록 `학교`에 다니지만 `교과서 공부`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미국의 대학들은 “대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곳”이란 원칙을 지킨다. 스포츠 스타를 키우는 곳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일정한 학점을 따지 못하면 그냥 낙제시키고, 최악의 경우 “다른 학교로 갈 것”을 권한다. 졸업장을 쉽게 주지 않는 것이다. 미국이나 중국 같은 큰 나라에서는 굳이 `국위 선양`을 위해 선수를 키울 이유가 없지만, 한국같은 중소국가들은 사정이 아주 다르다. 그런데 그것이 `적폐`란 오명을 쓴 것은 `정유라 사건` 이후의 일이다. 미국 대학의 제도를 `기준`으로 삼으면 적폐가 되겠지만 중소국가의 사정을 기준으로 삼으면 `관행`이 된다. 그래서 “바둑 기사와 운동선수에게 대학 졸업장이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그것은 `학력허영심을 충족시키는 장식품`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