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후 2시 5분께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동방 22마일(35.4㎞) 해상에서 원목운반선 인스피레이션 레이크(2만3천269t·홍콩 선적)와 채낚기 어선 209주영호가 충돌해 주영호 선원 2명이 숨지고 4명이 실종됐다. 주영호는 지난달 25일 오전 9시 포항 구룡포항을 출항해 보름 동안 장기조업 중이었다. 중국에서 출항해 러시아로 향하던 인스피레이션 레이크호는 씨앵커를 내리고 있던 주영호의 왼쪽 중앙부분을 그대로 들이받았다.
선장 박모 씨는 충돌 직후 함께 조업하는 선단 통신으로 “형님들 배 넘어갑니다”라는 조난 신호를 보냈고, 가까운 해상에 있던 선단 어선이 포항어업정보통신국에 신고를 접수했다. 인근 해역을 경비 중이던 해경 306함이 `해상 골든타임` 1시간 이내인 신고접수 20여 분만에 현장에 도착해 전복된 주영호 인근에서 3명(2명은 추후 사망)을 잇달아 구조했다.
V-PASS 설치사업은 해양경비안전본부가 해양사고에 신속하게 대응하고자 지난 2011년 1차를 시작으로 4차까지 모두 340억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해 국내 어선 6만6천여 척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주영호는 1차 사업 대상으로 2012년 V-PASS를 장착했으나 고장이 나 작동불능인 상태여서 포항해양경비안전서 상황실이 사고 당시 상황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주영호는 지난해 9월 고장신고를 접수하긴 했으나 해결이 안 돼 무용지물인 V-PASS를 단 채 조업을 해왔다. 2~4차 사업에 선정된 업체가 장비납품과 유지보수 등을 담당하고 있는데, 주영호는 보증기간마저 끝나 수리받기가 쉽지 않았다. 1차 사업 당시 V-PASS를 장착한 어선은 대부분 고장이 나거나 수시로 오작동을 일으키지만 아무런 대책을 강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 원인을 견시(전방주시의무)와 레이더 관측 등을 소홀히 한 레이크호의 일방과실 쪽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끔찍한 사고가 난 마당에 무슨 소용일 것인가. 지금도 많은 선박들이 있으나마나한 V-PASS를 단 채 위험한 조업운항을 지속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정부는 고장수리나 교체 등의 부담을 어민들에게만 떠맡기지 말고 직접 나서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민들의 안전을 보장해야 할 정부의 책임은 무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