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3당은 재벌 총수의 경영독주를 막고 경제민주화를 이뤄내겠다며 상법개정안을 발의하고 2월 국회에서 강행 처리할 방침이다. 야권 3당이 담합하면 어떤 법안이라도 통과시킬 수 있는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 같다. 사회적 토론을 거치지도 않았고, 국회에서조차 제대로 심의하지 않은 시점에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속전속결로 처리하려 하고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으로라도 급히 처리하겠다고 한다. 국가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법을 이렇게 졸속으로 통과시키겠다는 나라는 없다. 여소야대의 구도가 형성돼 있을 때 야권이 바라는대로 해놓겠다는 것인가.
그러나 야권이 내놓은 상법개정안은 대기업보다 오히려 중소·중견기업을 해친다. 재벌을 개혁하려다가 엉뚱하게 중소기업을 잡는다는 것이다. `대주주 의결권 제한`이 골자인데, “그렇게 되면 실제 외국자본이 중소 중견기업의 경영권을 뺏을 수 있다”는 반론이 제기됐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코스닥협회, 한국상장기업협의회 등은 “상법개정안은 상장회사를 규제 대상으로 하는데, 상장회사 중 대기업은 14%에 불과하고, 86%가 중소 중견기업으로 이들은 재벌개혁과 상관 없는 기업”이라 했다.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 태우고 경제민주화를 하려다가 `남 좋은 일`만 만든다는 뜻이다. `경제이론`만 알고 `경제현실`에는 어두운 국회의원들이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도 들어보지 않고 상법을 개정하겠다고 나선 것 자체가 무지요 오만이다. 국민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법안이라면 공론에 붙여 광범하게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 상식인데, 지금의 국회는 그 상식이 통하지 않는 `무작정 상정·통과`만 노린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더 심각한 분석을 내놓았다. `상법개정안`에서 추진하는 `감사위원 분리선출제`와 `집중투표제`는 국내 10개 기업 중 상당수를 투기자본의 `먹튀` 대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제가 도입되면 10대 기업 중 6곳에서 헤지펀드가 3~5명인 감사위원을 다 쓸어갈 수 있어서 대주주가 이기기 어렵다고 했다. 또 `집중투표제`를 도입하면 10대 기업 중 4곳에선 헤지펀드가 자기편 이사를 최소 1명 선임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결국 10대 기업 중 국내 주요 투자자들이 모두 뭉칠 경우 투기자본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기업은 SK·한화·현대중공업·롯데쇼핑 정도라는 것이다.
재벌을 잡으려다가 중소 중견기업을 잡게 되고 재벌의 경영 독주를 막으려다가 경영권 방어력이 무력화되어서 투기자본의 먹이가 되는 `재앙`을 자초하게 된다. 이런 법안을 청문회나 설명회 한번 없고, 토론회도 거치지 않고, 졸속으로 당장 2월 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는 야권의 독주가 걱정이다. 국회가 정말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