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포항역사, 청룡회관, 포항문화원 등은 오랫동안 포항의 상징물이었다. 지역민들은 물론이고, 포항을 다녀갔던 사람들에게는 추억의 주춧돌 같은 존재다. 포항의 역사를 상징하는 이런 건물들이 차례로 사라지는 것은 개발과 보존이라는 두 개의 가치가 충돌하는 가장 첨예한 현장에서 개발만을 중시하는 어리석은 현상이다. 낡았다고 해서,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해서 마구 훼손하고 부수고 없애버리는 일이 마냥 옳을 수는 없다.
서 교수는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고향을 떠나던 젊은이들이나 5일장을 보러오던 인근 지역 주민들은 물론, 동해안 지역민들에게 옛 포항역사는 무엇보다 소중한 유물”이라는 가치를 설명한다. 또 “청룡회관 역시 빨간 명찰을 달고 청춘기의 한 시기를 포항에서 해병으로 복무한 전국의 전우들에게 아스라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곳”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서 교수는 “이 같은 유산들이 시민들의 의견 수렴을 충분히 하지 않은채 공무원들의 판단에 따라 흔적도 없이 사라져 시민들의 향수와 자긍심도 훼손됐다”고 지적했다.
시민들의 삶과 궤적을 함께 해온 유서 깊은 건물들이 지역사회와 한마디 상의 없이 사라지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그는 포항문화원 철거를 예로 들면서 전문가 자문과 사회적 공론화 등을 거쳐 신중하게 검토한 뒤에 폐쇄 등의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서 교수는 이와 관련, 80년대 초에 일본의 역사도시 교토(京都)의 철도역 복합개발을 두고 보존과 개발이라는 가치가 충돌한 예를 들었다. 또 2차 대전 때 폭격으로 건물 자체가 무너져 내린 독일 드레스덴의 프라우엔키르헤(성모교회)를 무려 50년에 걸쳐 완전하게 복원한 사례도 들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고도화된 문화는 가벼운 듯하면서도 결코 사소하지 않는 물질적 정신적 유물로 인해서 계승 발전돼왔다. 현존하는 모든 문명의 흔적들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민족만이 미래의 번영을 보장받는다. ‘지역문화유산보존심의위원회’같은 별도기구를 두고 시민들과 합의해 역사적 유물의 철거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서 교수의 주장은 백번 옳다. 개발만능주의에 빠져서 아무 생각 없이 옛것을 마구 부수는 몰역사적 행태는 혁신되는 것이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