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경제전문가들<br />“임금 올려 경제 살리려는<br /> 소득주도성장 정책 실패”
#1. 포항철강공단 내 한 2차 협력업체에 근무하는 김석현(33)씨는 워라벨(Work and Life Balance·일과 생활의 균형)이라는 단어가 싫다. 정부가 근로시간 단축을 추진하며 워라벨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로시간이 줄면 지금도 빠듯한 월급이 더 줄고, 그동안 해오던 잔업, 특근 등이 한정돼 수당마저도 못 받을 처지다. 그는 “생활을 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정부는 근로자의 일하는 시간만 줄이면 생활이 윤택해질 거라는 1차원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2. 포항시 남구의 한 마트에서 일하던 정선희(43·여)씨는 최근 권고사직을 당했다. 마트 측은 올해 최저 시급이 오른 후 직원들에게 나가는 인건비를 부담스러워 했고, 최근 직원을 20% 가량 줄였다. 실업급여를 받으며 다른 일자리를 구하고 있지만, 지역 고용시장이 얼어붙어서인지 아르바이트조차 구하기 어렵다. 자영업자들도 아르바이트를 고용하지 않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최저임금을 역대 최고치로 올렸는데, 최저소득층 소득이 되레 줄어드는 기현상이 통계수치로 드러났다. 정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관련 통계청 자료가 발표된 지 이틀만인 지난 29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가계소득동향 점검 긴급회의를 열어 150분 동안 머리를 맞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최저소득층 가계소득이 줄어 소득분배가 악화한 것은 우리에게 매우 ‘아픈’지점”이라고 언급했다. 새 정부 들어 추진되고 있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허점이 까발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이날 정부는 정책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되 보완책을 마련한다는데 뜻을 모았다. 야당을 비롯한 일부 경제전문가들은 임금을 올려 서민들 주머니를 채우고, 이를 통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실패했다며, 대안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통계청의 올해 1분기(1∼3월)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최저소득층 소득이 관련 통계가 시작된 15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소득 수준에 따라 10분위로 나눠보면, 전국 2인 이상 가구 중 소득 하위 10%는 월평균 명목소득이 84만1천203원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2%(11만7천368원) 줄어든 수치다. 감소액과 감소율 모두 통계가 시작된 2003년 이후 가장 컸다. 물가변동 영향을 배제한 실질소득을 계산해보면 최저소득층의 소득 감소폭은 더 크다. 이와 대조적으로 소득 상위 10%의 월 명목소득은 올해 1분기 1천271만7천465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7%(122만5천64원) 늘었다. 즉, 올해 1∼3월 동안 가난한 사람들의 소득은 10분의 1가량이 줄었고, 부자들은 소득이 더 늘었다는 의미다. 특히 소득 상위 10%의 소득을 하위 10% 소득으로 나눈 10분위 배율은 15.11배로, 관련 통계를 시작한 후 소득 불평등이 가장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현상은 최저임금 인상 등을 통해 서민들의 소득을 인위적으로 올리면 경제도 자연스럽게 성장할 것이라고 기대한 현 정권의 정책과 상반된다. 더욱이 최저임금이 오른 후 각종 부작용이 고용생태를 흔들어 놓고, 지난 2∼4월 취업자 증가 폭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3개월 연속 10만명대에 머물면서 일자리문제 또한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안찬규기자 ack@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