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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예찬

등록일 2020-12-07 19:46 게재일 2020-12-08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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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임 작가의 ‘들풀예찬’ 작품.emf
최경임 작가의 ‘들풀예찬’ 작품.emf

벌과 나비가 찾아와 노닐만한 화려한 꽃을 피우지도 않았다. 한낮의 더위를 식힐 만큼 시원한 그늘을 만들지도 않았고 지친 몸 기대어 쉴 만큼 듬직하지도 않았다.

찬란한 봄의 시작을 알리는 봄꽃의 향연에서는 먼발치의 조연이었다. 한여름 작열하는 태양의 열정에 주눅 들지도 않았고 한여름 밤 풀벌레들이 노래할 수 있도록 어깨를 내주었다.

거센 비바람의 가을 태풍에도 한 치 변함없이 이 자리를 지켰다. 화려한 꽃들의 미려함을 시기하지도 않았고 자신의 투박한 외모를 한탄하지도 않았다.

열매 맺는 모든 것들의 존재감에도 부러워하지 않았고 지고지순의 굳건함을 자만하지도 않았다.

언 땅에 작은 뿌리 내렸던 더 넓은 들판 한 편에 불러주는 이름도 없이 겨울의 문턱까지 와 당당히 자리하고 있다.

늦은 가을 해질녘 찬바람에도 고귀하게 서 있는 이유는 내일의 붉은 태양을 맞이하기 위함이다.

/최경임(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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