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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정 한 줌 더하다

등록일 2022-07-03 20:02 게재일 2022-07-04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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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노추산 돌담.

물길 거슬러 걷는다. 강가 너럭바위에 듬성듬성 누군가가 나지막이 돌을 쌓아놓았다. 탑 하나, 탑 둘 헤아리다 보니 지금까지 보지 못한 풍경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속살을 조금씩 드러내는 노추산은 먼 길을 온 길손에게 무엇을 보여줄까.

궁금증이 저만치 앞서가는데, 길을 가로지르던 다람쥐가 빠끔 쳐다본다. 나를 따라오라는 듯 손짓을 하고는 돌탑을 돌아 숲속으로 사라진다. 돌탑이 늘어나는 것으로 보아 노추산에서는 나무만 숲이 되는 게 아닌가 보다. 돌탑도 숲을 이루어 한 발 한 발 들어갈수록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깊숙한 곳에 들자, 하늘이 텅 비어 있는 곳에 높고 낮은 탑들이 사방에 빼곡하다. 누군가의 간절함이 이루어낸 역사 앞에서 나무들조차 나붓이 엎드렸다. 나 또한 마음을 낮추고 돌아보는데, 무릎 높이만 한 움막이 반평생 여기서 돌탑을 쌓은 어머니의 내력을 전설한다.

어머니는 서울에서 강릉으로 시집왔다. 가정을 이루어 4남매를 두었지만, 아들 둘을 잃었고 그 후로 남편은 마음의 병을 얻어 시름시름 앓았다. 끊이지 않는 우환이 어머니의 죄 때문인가 싶어 마음이 무거운 어느 날, 산신령이 꿈에 나타나 돌탑 삼천 개를 쌓으면 가정에 어려움이 사라질 거라고 이른다. 어머니는 숙명인 양 돌탑을 쌓기 위해 영험한 터를 찾아다녔다.

어머니는 노추산에서 솟아나는 기운에 이끌려 조그마한 움막을 지었다. 길가에 아무렇게 널브러진 돌, 제 모양대로 계곡에 굴러다니는 돌, 땅속에 묻혀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돌을 주웠다. 작은 돌은 치마폭에 안고 큰 돌은 머리에 이고 한 걸음 두 걸음 옮겼다. 발목이 접질리고 허리가 아파도 돌을 날랐다. 숱한 비바람과 한설이 숱하게 다녀간 지 이십육 년, 일념으로 탑을 쌓으며 자식의 극락왕생을 빌었다고 전한다.

세상의 어머니들은 탑을 쌓는다. 당신이라는 주춧돌 위에 정성을 하나 둘 쌓아 올린다. 어머니의 행적을 가만히 짚어보면 삶의 길목마다 탑이 있다. 어머니 생각이 간절할 때 눈을 감고 ‘엄마’라고 가만히 불러보면 마음속에서 모습을 나타낸다.

탑 길에서 만난 돌들은 세상의 자식들이다. 자연의 몸을 빌려 만들어졌지만, 그 쓰임은 제각각이다. 주변의 것들과 어울리지 못할 만큼 큼직해 혼자 위풍당당하고 잘난 체하는 것도 있다. 때로는 너무 작아 눈에 띄지 않고 하물며 뒤돌아 있어 어둡고 습한 곳에 볼품없이 놓여 있는 돌들도 있다. 어떠한 돌도 어머니라는 이름을 만나면 아무렇게나 버려지지 않는다는 것을 모정의 탑에서 다시 본다.

탑에 찬찬히 눈 맞춤을 한다. 둥글납작한 돌은 돌탑의 아랫부분에서 버팀돌이 된다. 울퉁불퉁 곰보돌도 버팀돌위에 얹으면 위를 잘 떠받든다. 작고 얇은 돌은 넓적하고 평평한 돌 사이에 살짝 밀어 넣으면 굄돌이 된다. 모나고 삐뚤어진 돌도 사이에서 제 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얹고 얹히고, 기대고 떠받치고, 세상의 돌들이 모여 어떤 비바람에도 무너지지 않는 탑을 이루었다.

높이 곧추섰다고 해서 노추산인가. 돌탑을 다 수직으로 세우면 노추산 몇 배의 높이가 될 것이다. 돌 하나둘 쌓아 탑 하나가 되고, 탑 하나둘 쌓아 하늘에 닿기까지 어머니는 한시도 쉬지 않았으리라. 그리고 더는 기력이 없어 마지막 돌 하나를 놓고 나서 하늘에 진인사(盡人事)를 알렸으리라. 그러곤 자신의 목숨은 대천명(待天命)했으리라.

내 자식뿐만 아니라 모든 자식이 어딘가에 쓰임새가 있는 돌들이다. 이러한 돌들을 모은 어머니는 온몸으로 ‘塔’이라는 상형문자를 삼천이나 쌓았다. 어머니인 나는 이 세상의 자식들을 위해 무엇을 했을까. 생각의 꼬리를 잡고 거니는 사이 어느새 산 그림자가 어깨까지 드리운다.

모성의 높이를 재고 돌아가는 길, 한없이 낮아진 나는 길쭉한 돌 하나를 주워 소망의 탑에 살포시 올린다.     /이순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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