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잠을 자던 벌레들이 꿈틀거릴 때다. 어둑한 데서 꽁꽁 웅크렸다가 동면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 지났다. 몇몇 마음에 맞는 이들과 수목원 나들이 한다. 이곳은 계절 따라, 절기 따라 다양한 핑계를 대며 수시로 찾는 곳이다.
한 시간 남짓 차를 타고 달리면 경북수목원이 나온다. 수목원은 해발 500~900m로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분지로 이루어졌다. 수목원 주차장에 도착하니 시샘하는 늦겨울 바람이 한바탕 휘몰아친다. 따뜻하게 데운 보온병을 안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호수를 향한다. 갓길에는 키 작은 나무들이 간들바람 등에 타고 햇볕을 향해 왁자지껄하다.
호수로 가는 길 오른쪽 산비탈은 봄기운이 완연하다. 그런데도 서둘러 봄 단장 중이다. 지난해 심었다는 맥문동에 새 볏짚을 덮느라 일하시는 분들의 손길이 바쁘다. 그에 비해 왼쪽 양지바른 곳에 터 잡은 식물들은 이른 봄볕을 쬐느라 기지개를 켠다. 자주 오는 곳이지만, 올 때마다 수목원의 나무들이 주는 미세한 흔들거림은 늘 새롭다.
마음이 있는 곳이라 벌써 오감이 열린다. 호수가 아직 보이지도 않는데 먼저 귀가 열린다. 저 멀리 윙윙 윙, 개굴개굴하는 소리가 수목원을 들썩인다. 또 코가 발름거린다. 비릿하다. 그런데 어제의 비릿함이 아니다. 꾸덕꾸덕한 비릿함이다. 수목원의 햇볕에 무장해제 되었나 보다. 이제 눈마저 시원하다. 나뭇가지마다 꽃을 피우려 꽃눈이 빼꼼하다. 모든 감각이 호수로 향한다.
개구리들의 노래가 시작된 곳이 어디일까. 호숫가 가장자리 길섶이 소리에 누웠다 일제히 일어난다. 조심조심 다가가니 개구리들은 소리를 멈추고 호수로 냅다 줄행랑을 친다. 순식간에 길섶이 뒤에서부터 파도처럼 눕더니 개구리 떼들이 지나간다. 꼭꼭 숨어있던 개구리들이 물속으로 달린다. 무리에 합류하지 못한 개구리는 슬금슬금 기어간다. 이마저도 놓친 개구리들은 서로를 바라보고 사랑하느라 무리에서 멀어진다. 개구리 노랫소리가 호수를 맴돌아 수목원을 가득 채운다.
시를 읽고 피아노를 사랑하는 모임 ‘시피사모’가 있다. 커피 마시며 수다를 나누다 가볍게 결성한 모임이다. 가만 보니 그 중 한 사람은 수준급의 피아니스트요, 시를 읽고 나누는 시문학 강사이며 얼마 전까지 컴퓨터 지도를 한 강사, 손만 대면 집 안 구석구석이 환하게 환골탈태하는 달인 한 사람, 이렇게 회원은 넷이다. 한 사람을 빼고는 피아노 건반하고는 멀어 보이는 조합이다.
뒷방으로 밀려있던 먼지 뒤집어쓴 피아노를 조율했다. 시피사모는 멋진 꿈을 그렸고, 그 후로 심장이 떨렸다. 봄바람이 불면 우리가 배운 것을 거리공연 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선포했다. 꿈은 크게 그리고 그 시작은 작게, 첫 곡은 개구리 동요였다. 딩, 딩, 딩 한 음 한 음을 눌렀다. 거의 두 달 만에 개구리 전곡을 연주했다. 찬 바람이 부는 어느 날, 모두 피아노 앞에 모여 개구리 노래를 불렀다.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 밤새도록 하여도 듣는 이 없네. ~’ 집에서 연습할 때는 틀리지 않았는데 같이 노래 부르며 피아노 치니 두어 군데 틀렸다. 손에 땀이 났지만, 우리는 그렇게 훤한 낮에 노래를 떼창을 했다.
수목원의 산개구리 합창은 남성 중창단이다. 중, 저음의 묵직한 베이스음이 아래서 노래 각을 잡는다. 어쩌다 긴 울음 끝에 개구리 테너가 오선지에 튀어 오르기도 한다. 걸음을 멈추고 앉아 무슨 노래를 부르는가 싶어 귀를 더 연다. 조금만 귀를 기울여 들으니 개구리들은 일정한 음의 길이를 내고 있다. 여럿이 한 무더기의 음을 내는 듯하다. 잘 꾸며진 중창단 한 사람이 내는 목소리 같다. 개구리 합창단의 노랫말은 어떨까, 자꾸 궁금해진다. 허공에 그린 원고지에 ‘개구리 합창’ 제목을 적었다가 ‘시피사모’라 다시 썼다.
어느 토요일 저녁, 영일대해수욕장 한 모퉁이에서 개구리들의 합창이 들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