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 고랑에 푸른 물결이 일렁인다. 마늘잎 하나가 바람에 살랑대자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가만히 귀 기울이고 들여다본다. 벌써 알싸한 맛들이 아우성이다.
마늘밭 고랑에 서니 손과 발이 빨라진다. 마늘잎 가운에 있는 줄기를 잡고 마늘 대를 뽑는다. 아랫부분을 잡아당기면 부드럽고 여린 줄기가 달려나오는데, 그 촉감이 매끄럽다. 땀이 눈에 닿아 따갑도록 한참을 솎아 바구니가 불룩하다.
마늘종은 이맘때 솎아내야 한다. 제때 솎아내지 않으면 뿌리로 모아야 하는 영양을 줄기로 가져가기 때문이다. 이때는 일손이 턱없이 모자라 나처럼 어설픈 손도 보탠다. 막 연둣빛으로 물들이는 마늘종을 하나씩 솎아 넓고 큰 바구니에 부려놓는다. 허리는 아프지만, 마늘밭이 일으킨 멀미는 오히려 즐겁다. 마늘종을 만나는 즐거움도 있지만, 더 단단하게 여물어 갈 마늘 생각에 어지러운 멀미도 오히려 반갑다.
마늘종장아찌는 고기를 좋아하는 가족에게 필수다. 간장과 설탕 식초를 일대일로 넣어 팔팔 끓인다. 이때 마늘종에 붓는다. 식히고 끓이고 붓기를 서너 번 한다. 그런 후에 냉장고에 넣어두면 일 년 내내 밥상에 올라 고기와 더불어 약방의 감초 이상의 대접을 받는다.
우리가 먹는 음식에 마늘이 안 들어가는 곳이 없을 정도다. 열무김치를 담글 때도 마늘은 눈에 띄지 않게 버무려 김치가 맛깔스럽게 익도록 돕는다. 또한, 나물을 무칠 때도 나물의 성질에 맞게 마늘은 있는 듯 나붓이 엎드려 있다.
마늘의 매운맛은 중독된다. 소개팅에 나가 퇴짜를 맞고 돌아와 씩씩대며 고추와 마늘을 생으로 먹고 터뜨리는 울음, 싱싱한 회 한 점을 깻잎 위에 놓고 마늘을 얹어 먹으면 입안에 화기가 가득 찬다. 거기에 초고추장의 매운맛까지 더해져 스트레스가 날아간다.
과일은 단맛을 내기 위해 여물지만, 마늘은 매운맛을 위해 여문다. 맵기로는 고추도 한몫을 하지만, 마늘은 마늘만의 매움이 있다. 내가 아니면 누가 이 맛을 내랴. 마늘은 호기를 품고 익어간다. 입안에서 톡 쏘듯이 알싸하게 한쪽한쪽 여물어간다.
오월, 지금부터 마늘의 여물기는 시작된다. 땅의 것을 받아들여 마늘은 매운맛을 품는다. 쓴맛, 아린 맛, 시쿰한 모든 맛을 땅속에서 누르고 발효시켜 매운맛을 만든다. 불의 기운을 뭉치고 물의 기운으로 즙을 내어 조제된 육 쪽, 천연 향기는 중독성이 강해 울면서도 씹어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인생에 매운맛은 재채기처럼 온다. 눈물과 콧물을 쏙 빼면서 다가온다. 너무 매워 혀끝이 얼얼하고 입안에 감각이 사라진다. 동시에 식은땀이 난다. 이어서 정수리에서 땀방울이 생겨 이마를 타고 흐른다. 짠물이 흘러 눈에 들어가면 눈물이 난다. 울고 싶을 때 마늘 핑계를 대서라도 울어야 한다. 그래야 조금은 시원해진다.
흑마늘 만들기는 매운맛이 숙성하며 단맛을 낸다. 매운맛으로 똘똘 뭉친 마늘은 밥솥에서 수분을 빼고 찰지고 담백한 단맛으로 변한다. 보름 정도 익어가며 숙성의 과정을 거치며 흑마늘 약이 된다. 강렬했던 단맛의 기억만 있다면 인생의 참맛을 모른다. 불끈 두 주먹으로 파이팅을 외치며 한 일이 넘쳐흐르고, 앞선 이의 그림자만 좇아가며 맛보는 쓴맛도 있다. 중심이 아닌 변두리에서 서성거리고, 어쩌다 날린 한방이 또 허방일지라도. 단맛은 짧고 강하다 하지만 매운맛은 더 강력하고 오래 간다
여물어 익어 제맛을 내는 것은 사람이나 마늘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마늘은 마늘답게, 사람은 그 사람의 모습대로 익어간다. 사람 향기를 내기까지는 솎아내 지기도 하고 이제 괜찮다 싶으면 가지치기를 당하기도 한다. 그렇게 솎기고 가지 처지면서 튼실한 나만의 향기를 낸다. 마늘은 마늘대로 나는 나대로. 이런저런 맛을 보며 사람의 맛으로 익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