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는 바람을 몰고 다녔다. 사방 십 리에 할머니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생김새는 여장부 같고 목소리까지 짧아 강단이 있었다. 아이들은 할머니 집을 지날 때 머리카락이라도 보일까, 몸을 담벼락 아래로 낮추고 깨금발로 걸었다.
외삼촌도 가는 곳마다 바람을 일으켰다. 인물 좋고 언변이 좋았기에 늘 사람들의 중심에 섰다. 근거 없이 떠도는 풍문도 외삼촌의 입술을 스치면 솔깃한 이야기로 바뀌었다. 거짓도 진짜처럼 믿어 외삼촌의 말에 따라 이 마을 저 마을 땅문서가 들썩거리기까지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뭔가를 도모하던 외삼촌이 사라졌다. 알고 보니 야반도주였다. 외할머니집 앞에 낯선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장독 질자배기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술기운으로 내지르는 고함이 골목을 울렸다. 어떤 이는 대문을 밀치고 들어와 입에 거품을 물고 삿대질을 해댔다. 심지어 파출소 소장까지 찾아와 외삼촌이 있는 곳을 알려달라며 해가 질 때까지 안방에 드러누웠다. 사나워진 민심은 오래도록 대문 앞을 뒤흔들었다.
이런저런 소문이 마을에 날아들었다. 외삼촌이 바닷가 어느 마을에서 뱃일한다더라, 서울 어느 뒷골목에서 봤다더라, 헛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건너 사실처럼 담장을 넘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게도 낯선 사람이 다가와 넌지시 묻기도 했다.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던 소문이 잠잠해지면 또 다른 소문이 바람을 타고 왔다.
풍문도 뜸할 무렵이었다. 새벽 동살과 함께 소식 하나가 대문을 두드렸다. 외삼촌이 죽었다는, 꽤 구체적인 소식이었다. 울부짖을 법도 하련만, 외할머니는 사람들을 물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태연하게 이부자리를 갠 다음 앉은뱅이 경대를 끌어당겼다. 속내는 감출 수 없다는 듯 빗을 드는 손이 가늘게 떨렸다.
외삼촌이 뿌린 씨앗은 곳곳에서 불쑥불쑥 머리를 내밀었다. 외할머니는 여장부답게 그것들을 거둬들이기 시작했다. 사과하고, 물어주고, 때로는 자식 대신 잘못을 빌러 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다. 외할머니의 강단 있는 오지랖이 통했는지, 엉키고 꼬였던 사태는 빨리 수습되었다.
거울 앞에 꼿꼿하게 앉은 모습은 외할머니만의 시위였다. 바람 앞에 먼저 나서 잡다한 것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려는 의지이기도 했다. 외할머니에게 빗질은 마음을 흐트러트리는 바람을 변주하는 의식이었고 비녀는 마음을 단속하는 빗장이었다.
“음”
비녀를 지르는 소리는 숱한 언어를 함축하고 있었다. 대범한 여장부라고 해서 눈 한 번 깜짝하지 않으랴. 외할머니도 자신을 단속하던 모든 것을 풀어헤친 채 목 놓아 울고 싶었으리라.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회한, 자식을 먼저 보낸다는 통한, 부유하는 감정들이 충돌하고 교차하다가 밖으로 나오려고 아우성칠 때 외할머니는 단음절로 묶어 내뱉었다.
언제부턴가 외할머니는 경대 앞에 앉지 않았다. 마실이라도 나갈 때면 치맛자락을 스치는 바람에도 흔들렸다. 그 후 나는 경호원이 되어 나들이를 부축했다. 외할머니의 모습이 시나브로 헝클어지고 당신 스스로 빗질할 기력을 잃자, 마음의 빗장도 낡고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비녀를 지르지 않은 날이 늘었다. 외할머니는 더는 허리를 세우지 못하고 다음 세상으로 가는 문의 빗장이 열리려는지, 며칠 동안 가만히 누워 눈망울만 끔뻑거렸다. 자정이 넘어 엄마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면서 외할머니는 눈을 감았다.
할머니의 영정 앞에 향내가 피어오르고 대문에 조등이 내걸렸다. 외할머니의 오지랖이 얼마나 넓었는지 멀리서도 조문객이 찾아와 회자정리(會者定離)를 했다. 사람들은 할머니의 삶을 한데 모아 간단한 말로 비녀를 질렀다.
“ 저 노인네, 이제는 쉴 때도 되었다.”
바람 많은 삶답게 할머니가 떠나는 날에도 바람은 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