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무가 어촌 마을 잠수부의 애환을 계속 이어간다. 굿을 하는 무당이 용마람 태수에게 “태수 태수 비개 태수 용마람에 대장, 대장이 오거 덜랑”이라는 주술로 죽은 머구리 아재의 영혼을 용왕전에 이르게 하는데, 문어귀신으로 보이는 흰 수염을 한 여덟 다리 대문어가 나타났다. 문어가 영리해서 각종 경기 결과를 예측하는 등의 영물로 여기기도 하지만 얼마 전 죽은 아재 머구리가 문어 용왕으로 변하여 새파랗게 젊은 부인에게 빙의가 되어 말을 한다.
울음 섞인 부인의 목소리를 빌려, 왜 그동안 나를 그렇게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 났느냐고? 그렇게 날카로운 작살로 수차례에 걸쳐 나를 찌르고 죽이고 했지 않느냐고? 이제 젊은 여자의 목소리로 변한다. 더 큰 목소리로 울면서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했겠느냐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그냥 굶어 죽느니 용왕이든 문어든 살기 위해서 그랬다고, 죽은 머구리를 살려 달라고 간절히 애원한다. 애원이 먹혀든 것처럼 굿청의 제단에 담아 둔 쌀이 조금씩 움직인다. 무당은 더욱 신명을 울려, 보란 듯이 원혼을 달랜다.
1997년 11월 IMF가 닥쳤다. 노원구에서 주유소를 하던 김 사장은 주유소 토지는 그동안 번 돈으로 매입 했지만 건축물을 짓기 위한 자금은 모두 은행 융자로 활용했던 것인데, IMF로 인하여 은행의 금리가 한꺼번에 3%에서 7%까지 올랐고 매번 2년 단위로 연장 해주던 기간도 끝이나 버렸다. 그리고 그 동안 외상으로 기름을 가져 와서 팔아서 그 돈을 갚았는데 이제는 정유사에서도 외상으로 기름을 주지 않았다. 한꺼번에 큰돈이 필요했다. 다른 목 좋은 곳에 있는 다른 부동산을 내 놓아도 팔리지 않았다.
결국 부도가 났다. 현실은 너무나 비참했다. 1997년 11월 22일 김영삼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계기로 대한민국 경제는 하루아침에 IMF관리 하에 운영되었다. 2001년 8월 23일까지 3년 8개월에 걸친 외환위기 사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던 대우그룹도 넘어갔다. 그동안 신경제를 내세우면서 세계부자대열에 끼었다고 자랑하던 게 엊그제인데 하루아침에 빚더미 삼류 국가로 전략되면서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망하고 말았던가? 지하도에는 걸인이 속출하고 부도를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증권에 투자 할 때 닭 계란을 한소쿠리에 담지 말라는 격언이 있다. 김 사장은 돈을 투자함에 있어 분산해서 투자해야 한다는 생각에 골몰 하였으나 적은 돈으로 쪼개어 투자한다는 것은 이론에 불과 했다.
그 때 공기업에서 일 할 때 같은 부서에서 근무한 동료였던 강 선배가 S시가 고향인데 거기가 개발되고 있다면서 김 사장 보고 자기 고향동네에 와서 한번 토지개발 사업에 참여 해보라는 것이었다. 마침 그 때 강 선배와 같이 매입한 임야도 있었다. 그 동료 선배의 고향 마을이 S시의 외곽지 이긴 하지만 서울과 가까운 쪽이라서 장래가 있는 곳이었다. 그곳은 아직 주민들이 부동산에 대한 인식이 낮았고 부동산 투기 바람도 불지 않는 곳이었다.
토지구획정리사업을 새로 시작하기 위해 조합원을 찾아다니며 참여 동의권을 확보하는데 밤낮이 없었다. 강 선배와 함께 T공기업에 있을 때 잘 알던 A건설회사가 토지구획조합을 구성하여 택지를 개발하는 사업에 참여 했던 것이다. 토지구획정리 사업은 민간조합이 일단의 지역의 토지를 택지로 개발하는 사업인데, 우선 이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토지소유자인 조합원들의 동의서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이었다. 벌써 다른 팀들이 회사를 끼고 설치고 있었다.
다행히 이 지역은 강 선배의 집성촌이었다. 우선 강 선배는 집안 문중의 토지소유자를 맡고, 김 사장은 건설회사의 부사장과 함께 그 외 토지소유자를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설득하였다. 강 선배의 가까운 친척이 가장 많은 토지를 갖고 있고, 문중의 임야가 수만 평이나 편입되는 지역으로 자연녹지에서 주거지역으로 풀려 있었다.
우리가 과반수 이상 동의서를 확보하여 강 선배의 친척을 조합장으로 추대하여 토지구획정리조합을 구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A건설회사가 시공사로 계약이 이루어졌다. 이 일로 강 선배와 김 사장은 당초 약속한대로 상당한 금액을 보상금으로 받을 수 있었다. IMF로 서울에서 잘 운영 되던 주유소 부도가 나 그동안 엄청난 고난과 시련을 겪어 왔는데, 토지구획정리사업 성사로 어느 정도 회복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 당시 전국적으로 온천관광이 유행했다. 대전 유성에 있는 온천 목욕탕을 경매로 낙찰 봤다. 그 당시만 해도 대전이 한참 발전 해 가고 있었다. 대전 과학엑스포 대회는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려왔는데, 이를 통해 우리나라가 과학 선진국으로 가는 토대를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낙찰 본 온천을 수리하려고 하니 너무나 큰 문제가 발생했다. 법원에서 온천 목욕탕을 낙찰 봤는데 부동산 소유권만 취득하고 지하에 매설되어 온천물을 끌어 올리고 있는 온천공을 매입하지 못 한 것이었다. 온천공에 대한 권리는 소유권과는 별개의 권리로 독립된 법적 권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