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은 넓고 무료다. 입구 화장실 건물에 등나무 덩쿨이 무성한데 뒤늦게 핀 보랏빛 등꽃 몇 송이가 일행을 반긴다. 그 앞에 연호공원이라고 글자 조형물이 섰다. 사진 찍기 좋게 양 끝에 앉는 자리까지 놓였다. 공원은 시내 중심에 자리하여 접근성이 좋은 관계로 울진군민뿐 아니라 울진을 찾은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곳 중 한 곳이다.
호수를 감싼 언덕에 오르니 소나무가 숲을 이룬다. 숲에서 호수 경치가 잘 보이는 곳에 연호정이 자리했다. 이 연호정이 있는 곳은 원래는 1815년(조선 순조 15년)에 건립한 향원정이라는 정자가 자리하고 있었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정자가 퇴락하여 1922년 옛 동헌의 객사 건물을 향원정의 자리에 옮겨 세우고 연호정(蓮湖亭)이라 명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소나무 사이로 내려다 보이는 호수에 연꽃이 한창이다. 연꽃이 가득한 호수를 내려다보기에 좋은 정자라는 이름이 딱 어울린다. 그런데 풍경 중앙에 정자가 하나 더 보인다. 호수 가운데 세운 월연정이다. 아래로 내려서니 입구에 어락교라는 나무다리가 있는데 월연정까지 인도교로 폭 4m에 길이 51.9m의 규모다. 장자의 ‘물고기의 즐거움’이라는 사유 세계를 따서 지었다고 한다.
월연정에 오르니 호수를 사방으로 돌아볼 수 있어서 좋았다. 정자 기둥과 기둥 사이가 액자처럼 서로 다른 경치를 보여준다. 울진과학체험관과 전망대가 한 장면, 그 옆으로 코스모스가 한 장면, 눈을 돌리니 금계국이 한켠에 피었다. 무엇보다 호수 둘레를 따라 분홍빛으로 핀 연꽃이 가장 잘 보이는 정자다. 지역 선비들이 연호정에서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기던 선비들이 달에 비친 연꽃에 취한다는 의미로 월연정(月蓮亭)이라 지었다고 한다. 이름값을 하는 정자다.
우리도 연꽃의 향에 취하려고 호수를 한 바퀴 돌았다. 울진군에서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해 벤치를 곳곳에 배치했다. 그중에 센스가 돋보이는 의자는 앉아서 휴대폰 충전이 가능한 것이다. 좋은 글귀를 읽으며 연꽃 구경까지 하다 보면 시간이 스르륵 흘러 배터리가 가득 찬다.
보슬비가 하염없이 연잎에 내렸다. 커다란 잎에 작은 연못이 만들어졌다. 고려 시대 문장가들은 특히 연꽃을 사랑하였다. 맑고 강직한 성품의 곽예는 비가 오면 혼자 우산을 들고 연못으로 가 오래도록 연꽃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시를 남겼다. 최해라는 시인의 ‘빗속의 연꽃’이라는 시에는 당나라의 탐욕스러운 관리인 원재라는 사람이 등장한다. 죽고 나서 그 사람의 창고에서 후추가 팔백 가마나 나왔고 종유 기름도 오백 냥이 나왔는데 평생을 써도 절대로 쓸 수 없는 엄청난 양이었다. 두 번째 구절은 천년을 두고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다고 적었다.
세 번째 구절에는 푸른 옥으로 됫박을 만들었다고 적었는데 푸른 옥은 연잎을 말한다. 그럼 됫박은 무엇일까? 비 오는 날 쪼그리고 앉아 연잎을 가만히 보다 보면 그 의미를 알게 된다. 빗방울이 연잎에 떨어지면 또르르 굴러 가운데로 모인다. 이제 마지막 구절을 보자. ‘종일 맑은 구슬을 담고 또 담는가’라고 맺는다. 하늘에서 내려온 구술이 모이고 모이면 연잎이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살짝 기울어진다. 그동안 모은 구슬을 연못 위로 쏟아붓는다. 그 모습을 됫박질로 표현한 것이다.
연호에 연잎이 종일 모은 구슬로 가득 찼다. 비 오는 날에는 울진의 연지리에 가서 곽예가 되었다가 최해가 되었다가 하며 하루를 보내도 좋을 듯하다.
/김순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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