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 나비, 무당벌레 등 개학 때면 각자가 채집해 박제한 곤충의 스크랩을 비교해보느라 시끌벅적했다. 간혹 실물 곤충을 케이지 안에 넣어온 아이가 있어 한바탕 야단법석을 떨기도 했다. 밀린 일기를 쓰느라 기상청에 전화해 지나간 날의 날씨를 기록하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먼저 일기를 쓴 친구들의 날씨를 베껴 적곤 했다.
우리는 따분한 여름을 산으로 강으로 계곡으로 돌아다녔다. 그 시절 내륙지방의 여름은 큰맘 먹고 떠나보는 것이 영덕 해수욕장 정도였다. 기동력이 없던 시절이라 떠나도 모두 동해안 언저리여서 영덕 가서 회 먹고 돌아오는 거면 호사 중에도 큰 호사였다. 꾸불꾸불한 34호 국도를 타고 다녔던 영덕은 고속도로 개통으로 이제 안동에서 한 시간이면 도착 가능한 거리가 되었다.
개학을 맞이하면 때론 빈자리가 보이기도 했다. 여름 물놀이에 휩쓸려 영영 돌아오지 않는 아이의 자리였다. 잠시 슬퍼했지만 우리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만큼 어렸으니까.
개미굴에 개미는 몇 마리가 들어가는지, 고추잠자리 날개 한쪽을 뜯어내도 잘 나는지를 지켜보는 데만 한나절이 걸렸다. 놀 시간이 모자라도 괜찮았다. 내일 다시 만나 놀면 됐으니까. 비상연락망에 적힌 연락처에는 간혹 ‘안집’이라고 적힌 아이도 있었다. 세 들어 살던 아이들이 주인집 전화번호를 적어둔 것이다. 그런 모든 것들이 아랑곳없던 시절, 하루 종일 휴대폰 없이 밖으로 돌아다녀도 부모님들은 걱정하지 않았다. 저녁을 집에서 먹는다는 건 그 시절 어린이들의 ‘국룰’이었으므로.
물 맑은 길안천에서 골부리를 줍고 모기향을 피운 골목길 들마루에 누워 두런두런 어른들의 수다에 잠들던 여름밤. 수박서리를 하다 걸려 원두막 아래에서 벌서던 친구들을 놀리던 기억까지, 그 시절 우리가 채집한 추억은 얼마나 많이 박제되어 있을까.
이번 주부터 학교별로 개학을 맞이한다. 겨울방학에 비해 여름방학은 유난히 짧은 느낌이다. 방과후 수업을 받거나 학원을 다니거나, 아이들은 짧은 탐구생활을 마치고 학교에 복귀한다. 매미소리에 귀 기울이고 땡볕에도 맘껏 뛰놀던 시절은 지났지만 밀린 방학숙제에 괴로워하는 모습은 똑같은 개학이 다가왔다. /백소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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