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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소리사’에 얽힌 추억

박선유 시민기자
등록일 2023-08-15 18:04 게재일 2023-08-16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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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의 음반가게 대전 소리사.
토요일 오후 2시 사람도 차도 붐비는 시간. 평소라면 대릉원 쪽 도로로 진입을 했을 터이지만 조금 둘러가더라도 시장 쪽으로 차를 돌렸다. 거리는 조금 더 멀어져도 시간은 단축된다. 몇 년 사이 참 많이 달라졌다. 붐비는 시내를 피하려 둘러 다니던 황남동은 이제 반대 입장이 되었다. 중심상가가 오늘따라 더 조용하다. 간판이 낡지 않았는데 임대 문의가 붙은 곳들이 보인다. 주차를 하고 잠시 걸어 목적지인 대전 소리사로 향했다. 1969년 문을 연 이곳은 이제 경주 유일의 음반 판매점이 되었다.

시작은 전자제품들을 판매하면서 함께 끼워 팔던 한 두 장의 음반들로부터 시작되었다. 기계를 사갔던 고객들이 다시 찾아 추가로 음반들을 구매하면서 수요가 점점 늘어났다. 경주에선 클래식 음반을 흔히 구하기 힘들었던 때라 유일한 판매처였던 이곳을 찾는 이가 많았다. 경주관광전문대와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가 생겨난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교육청에서 음반 구입 사업을 진행한 것도 한 몫 했다. 학창 시절 등굣길, 점심시간을 채우던 클래식 음악들의 출처였다.


지금은 유일한 음반가게가 되었지만 20~30년 전만 해도 열댓 개의 음반 판매점이 성업 중이었다. 당시 회원 가게들이 적힌 한국음반협회 경주시 지부회 회원 수첩을 보여주셨다. 익숙한 이름이 더러 보였다. 매달 평양냉면집에서 모임을 가졌는데 여러 회칙들이 적혀있다. 그 중 재밌는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협회에서 정해 둔 쉬는 날이 있는데 문을 열면 벌금으로 쌀 한가마니를 내야 한다. 그리고 회원 경조사에 대한 부분들도 상세히 적혀있었다.


오래된 역사만큼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많으리라 여쭤보았다. 잠시 지긋이 하늘을 올려다 보시더니 한자락 한자락 추억들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가게 문을 열고 지금까지 규칙이 술을 마신 사람이나 취한 이에겐 음반을 판매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술 냄새를 풍기는 손님이 문 앞에 서서 이미자 음반을 찾았다. 거절할 핑계삼아 음반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음반이 인기 음반이라 입구에서 떡하니 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어서 금방 들통나버렸다. 지금이야 웃으며 말씀하시지만 당시엔 참 난감한 순간이었으리라.


지금은 낯선 이가 음식이나 먹거리를 주면 지레 겁먹고 거절하거나 피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과거엔 작은 콩 한 쪽도 나눠먹던 시절이었다며 또 하나의 에피소드를 알려주셨다.


최진희 음반을 사갔던 고객에 대한 기억이다. 음반을 사간 후 몇 차례 교환을 하러 들렀던 그녀는 어느 날 감자를 가져다주었다. 고마움에 대한 표시로 가져온 선물이었다. 요소 비료 포대 안에 감자를 담고 새끼줄로 감아 감포에서 시내까지 가져온 것이었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추억 중 하나다.


그리고 월성원자력 발전소가 생길 쯤 타지역 사람들과 외국인들이 종종 이곳을 찾았는데 어느 날은 캐나다 사람들로 가게가 가득 차기도 했었다. 그러다 울산간 도로가 생기고부터는 보기 힘들어졌다.


명절이 되면 가게 한켠에 강정 두자루가 자리 잡았다. 고향을 찾지 못하는 이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준비한 강정들이었다.


지금이야 스마트 폰으로 몇 번 누르면 승차권 예약쯤은 별일 아니지만 당시엔 멀리 사는 단골들을 대신해 고속버스 터미널 예약을 대신 해주기도 했다. 마음 없이는 할 수 없는 번거로운 일이었음에도 추억을 떠올리는 사장님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꼬마 손님 몇이 요즘 유행하는 아이돌 음반을 찾아 다녀갔다. 특히 어린이날이 되면 부모님 손을 잡고 많이 찾는다고 한다. 수기로 적는 주문서엔 메모로 가득 차 있었다.


한 시간 가량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갑자기 중요한 질문 하나를 놓친 걸 깨달았다. 서둘러 전화를 걸었다. 대전 소리사는 어떻게 해서 지어진 이름일까요? “예전엔 장사를 크게 잘해서 밭이랑 논 같은 땅을 많이 사라고 그렇게들 지었어.” 30년 만에 궁금증이 풀린 시간이었다.


옆에서 함께 하던 서점과 가게들이 벌써 몇 차례 바뀌었고 내일 풍경은 오늘의 모습이 아닐 것이다. 그 안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아날로그 시대의 낭만. 대전 소리사만큼은 오래도록 남아주길 바라본다. 오랜만에 구입한 빨간색 커버의 비틀즈 음반이 오후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박선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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