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굿은 봄부터 여름까지 논밭을 매던 호미를 씻어 걸어두고 잠시 쉰다는 뜻으로 호미씻이 또는 호미걸이라고도 부르며, 풋굿은 조선 후기에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두레 결산을 하면서 지주들이 일꾼들을 위로하려 술과 음식을 마련하고 잔치를 한 것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풋굿날은 마을 사람들이 일손을 놓고 집집마다 마련한 술과 떡 등 음식을 먹고 마시며 노는 날이다. 윷놀이, 팔씨름, 농악놀이에 맞춰 춤을 추며 흥겹게 즐기기도 했고, 각자가 베어온 꼴을 모아두고 낫을 던져 이기는 사람이 꼴을 모두 가져가는 게임도 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봉화의 모든 마을이 풋굿날을 맞아 행사를 치렀으나 농촌사회 변화와 노령화로 요즈음은 경로당에서 한끼 식사로 대신하거나, 윶놀이에 흥이 오르면 노래방기계에 맞춰 노래자랑 정도로 바뀌었다.
잔치가 있으면 으레 농악이 흥을 돋우고 어두워질 때까지 하루를 즐기며 마을 화합의 장이 되었다. 지금도 봉화의 여러 마을이 그 맥을 이어 풋굿날 행사를 하고 있다.
최근 봉화군 춘양면 도심3리 마을에서도 예전 같지는 않지만 풋굿날 잔치가 벌어졌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8월 15일 정일로 풋굿 행사를 계승하고 있다. 동이 트기 시작하면 남자들은 이장의 진두지휘로 마을 입구에서부터 구석구석 풀베기 작업을 하고, 부녀회원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음식을 준비한다.
귀농한 젊은 사람부터 80대 어르신까지 모두 나와 풀베기 작업을 하는데 아침식사 때쯤은 모두 끝난다. 땀 흘리며 풀베기하는 곳을 부녀회원들이 찾아다니며 시원한 물과 수박 등을 공급하고 식사를 준비한다. 풀베기가 끝나면 마을 느티나무 그늘에 모여 점심까지 함께하기도 한다.
풋굿날은 출향민들도 고향을 찾아와 함께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농업문화의 중심이었던 모내기, 품앗이, 벼 베기, 관혼상제 등 공동체 활동이 주였고 마을 공동체는 규정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풍습으로 전승된 우리 본연의 삶의 모습이었다.
두레가 없어지고 머슴이 없는 지금도 도심3리(황터, 약물내기, 물미) 50여 가구가 공동작업으로 함께 땀을 흘리고, 부녀회원들이 준비한 음식을 먹으며 화합과 친목을 다지는 미풍양속을 이어오고 있다. /류중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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