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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아니 아름다운 미래

김순희 시민기자
등록일 2023-08-29 18:37 게재일 2023-08-3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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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우다)’를 다시 꺼내 읽었다. 1992년 발간 이후 세계 5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지금까지 전 세계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책이다. 우리나라도 이미 고령화된 사회라 책 내용 중에 눈에 뜨인 것은, 4대가 한집에 살며 모두가 맡은 일이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연로한 할아버지가 낮에 지붕에 올라가 허물어진 곳을 수리하고 그날 밤 주무시다 돌아가셨다. 자신이 태어나고 살던 집에서 늘 그렇듯 일상을 보내다 자는 듯 생을 달리하는 모습이 참 편안해 보였다. 산소호흡기에 오래 의지하며 온 가족이 지친 다음에야 살던 집이 아닌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는 우리의 모습과 달라서 좋았다.

경주 복합문화공간 플레이스 씨(Place C)가 개관 기념으로 ‘로즈 와일리: Hullo Again’ 展(전)을 개최했다.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고 몸으로 말하는 로즈 와일리의 전시다. 47세에 미술 학위를 받았지만 큰 명성을 얻지 못하다 76세에 ‘영국에서 가장 핫한 작가’ 중 한 명으로 선정되며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현재 90세로 여전히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한다.


올 10월 3일까지 열리는 ‘로즈 와일리: Hullo Again’ 전에는 그를 세계에 알린 대형 유화 작품 40점, 드로잉 작품 45점, 국내 최초로 공개되는 조형물을 포함한 25점과 최신 연작 등 작가의 세계관이 담긴 작품 총 110점을 전시한다. 전시장 입구에 노란 병아리 조형물이 사람들을 반긴다. 그림이 아닌 조형물들은 디자인은 작가가 하지만 제작은 다른 전문가가 해 준다고 한다. 그 외에 여러 모양의 새가 곳곳에 놓였고 가위, 와인, 아들의 친구인 얀의 두상도 코너에 놓였으니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로즈 와일리의 가장 큰 규모의 조형물인 거대 ‘파인애플(Pineapple)’이 국내 최초로 공개된다. 이 거대 조형물은 플레이스 씨 야외 정원의 거울 연못 위에 설치했다.


영화 보는 것을 즐겨서 매일 한 편씩 본다고 하니 열정이 대단한 분이다. 그 영화들 또한 작품에 녹여서 한 방을 차지한다. 또 작품의 많은 소재는 동물이었다. 코끼리, 곰 같은 큰 동물과 곤충도 여럿 등장한다. 영국 사람이라서인가 축구 경기장이나 선수들의 움직임이 살아 넘치는 장면 또한 재치 있게 그렸다. 표정만 봐도 경기장의 함성이 들리는 것 같은 작품이 벽면 가득하다. 손흥민 선수의 골 세리머니와 등번호 7이 적힌 그림도 있으니 찾아보길 바란다.


A4용지에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을 옮기고 수정할 부분을 오리고 덧대서 붙여 완성한 다음 캔버스에 실현한 것을 함께 전시해서 작가의 작품 하는 과정을 다 보여준다. 캔버스에 그리다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덧대서 수정했다. 캔버스가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면 덧댄 자국으로 덕지덕지한 느낌이다. 작품 곳곳에 그가 기르는 고양이가 지나간 발자국이 그대로 찍혔고 그것 또한 작품의 과정이라고 남겨둔 그림이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나이 많은 할머니의 작품이라기보다는 젊은 작가의 기발함이 느껴졌다. 앞서서 갈 테니 이렇게 나이 들라고 알려주는 전시회였다. 경주시민은 입장료를 할인해주고, 지인들과 다시 한번 더 방문하니 50% 할인해주었다. 오전 10시 30분∼저녁 6시, 주말엔 2시간 연장한다. 오전 11시 30분과 오후 3시에 도슨트의 설명을 들을 수 있으니 확인하고 가면 좋을 듯하다.


한편 ‘플레이스 씨(Place C)’는 최근 경주시 사정동에 개관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약 2000평 부지에 연 면적 총 600평 규모의 1층 전시관과 한식당, 2층 카페와 VIP클럽 그리고 야외 정원으로 구성했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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