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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동안 경주의 들 밝히는 백일홍

김순희 시민기자
등록일 2023-10-03 18:29 게재일 2023-10-04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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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남동 백만송이 백일홍 만개<br/>울긋불긋 꽃나들이 인파 북적
노을 지는 시간에 가면 능 뒤로 해넘이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경주시 황남동에 꽃밭이 넘실댄다. 백만 송이 백일홍이 백 일 가까이 붉게 놋점들을 가득 채웠다. 사방을 둘러보면 어디나 푸른 능이 엎드렸다. 저 멀리 고분을 배경으로 꽃 사이를 거니는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면 바로 경주라는 것을 눈치챈다. 소식을 들은 관광객들로 꽃길 가득 카메라를 든 사람들로 넘친다. 4월 유채꽃으로 노랗게 뒤덮혔던 이곳이 가을에 어울리도록 울긋불긋한 색으로 물들었다.

꽃잎을 만지니 여린 다른 꽃들에 비해 톡톡하니 두껍다. 백일초라 100일 동안 붉게 펴 시들지 않을 꽃처럼 단단하다. 오랫동안 시들지 않겠다는 꽃의 의지가 느껴진다. 높이 60∼90㎝이다. 멕시코 원산의 귀화식물이며 관상용으로 우리나라 곳곳에 심는다. 원래 잡초였으나 여러 화훼 농가들이 개량해 현재의 모습이 되어 들꽃을 개량한 본보기의 하나이다.


야생에서는 자주색에 가까웠으나, 수 차례의 개량을 통해 밝은 빛을 띠는 꽃이 탄생했다. 배롱나무의 꽃을 백일홍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다른 식물이다. 한국에서는 이재위의 ‘물보(物譜)’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정확한 도래 경로는 알 수 없으나 1800년 이전부터 관상용으로 재배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백일홍은 설화를 가진 꽃이다. 옛날 어떤 어촌에서 목이 셋이나 되는 이무기에게 해마다 처녀를 제물로 바치고 있었다. 어느 해에도 한 처녀의 차례가 되어 모두 슬픔에 빠져 있는데, 어디선가 용사가 나타나 자신이 이무기를 처치하겠다고 자원하였다. 처녀로 가장하여 기다리던 용사는 이무기가 나타나자 달려들어 칼로 쳤으나 이무기는 목 하나만 잘린 채 도망갔다.


보은의 뜻으로 혼인을 청하는 처녀에게 용사는 지금 자신은 전쟁터에 나가는 길이니 100일만 기다리면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만약 흰 깃발을 단 배로 돌아오면 승리하여 생환하는 것이요, 붉은 깃발을 단 배로 돌아오면 패배하여 주검으로 돌아오는 줄 알라고 이르고 떠나갔다.


그 뒤 처녀는 100일이 되기를 기다리며 높은 산에 올라 수평선을 지켜보았다. 이윽고 수평선 위에 용사가 탄 배가 나타나 다가왔으나 붉은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처녀는 절망한 나머지 자결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사실은 용사가 다시 이무기와 싸워, 그 피가 흰 깃발을 붉게 물들였던 것이다. 그 뒤 처녀의 무덤에서 이름 모를 꽃이 피어났는데, 백일기도를 하던 처녀의 넋이 꽃으로 피어났다 하여 백일홍이라 불렀다 한다.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몇 개의 유명한 모티프가 결합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즉 ‘심청전’의 ‘인신공희’ 모티프, ‘지하국대적퇴치설화’의 ‘괴물 퇴치’ 모티프, ‘치마바위설화’의 ‘선호의 색깔을 오인한 자결’ 모티프, ‘할미꽃설화’의 ‘꽃으로의 환생’ 모티프 등이 그것이다. ‘삼국유사’에 수록된 ‘거타지 설화’, ‘고려사’에 수록된 ‘작제건 설화’, ‘두꺼비의 보은 설화’, ‘김녕사굴 뱀설화’ 등도 인신공희 모티프와 괴물 퇴치 모티프가 결합된 이야기 유형으로 볼 수 있다.


이들 모티프는 서양의 테세우스 또는 페르세우스 등의 영웅담에도 나타나는 것으로 범세계적인 분포를 보이고 있으며, 구비문학뿐만 아니라 기록문학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쳐 끊임없이 문학의 테마가 되어왔다는 점에서 중시된다.


꽃밭 사이에 잔디만 심은 곳이 있다. 아직 발굴되지 않은 고분이라고 팻말이 붙었다. 그곳은 들어가지 말고 꽃길따라 산책을 즐기면 된다. 꽃이 워낙 인기라 꽃밭 근처에 주차장이 차로 그득하다. 쪽샘지구까지 가면 무료 주차도 가능하다. 백일홍을 배경으로 노을 지는 장면이 더 장관이니 오후 5∼6시 사이에 방문하는 걸 추천한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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