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지베르니 ‘낙강물길공원’<br/>이상룡 선생이 태어난 ‘임청각’<br/>야경이 멋들어진 ‘월영교’ 등<br/>다채로운 역사와 아름다움 눈길
이젠 본댐 바로 근처로 간다. 높게 쌓은 댐 바로 아래 한국의 지베르니라고 불리는 낙강물길공원이 자리했다. 안동 비밀의 숲이라고도 불린다. 공원으로 가는 입구부터 주차장에 이르기까지 가로수가 은행나무이다. 가을이 깊어 갈수록 푸른 잎이 노란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10월 말이면 가로수길만으로도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을 것이다.
또한 호수를 바라보며 즐기는 혼크닉은 어느 카페 부럽지 않다. 곳곳에 숨어있는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으면 마치 모네가 된 듯한 환상을 준다. 작은 규모에 비해 폭포가 멋드러지게 쏟아지고 분수도 솟구친다. 숲속 쉼터를 지나 조금만 더 오르면 안동루로 오르는 계단을 만날 수 있고, 그곳에서는 안동댐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보조댐 인근에는 우리나라에서 살림집 중 가장 오래된 임청각이 있다. 임청각은 그 역사와 아름다움만큼이나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이 태어난 집으로 더욱 유명하다. 석주 이상룡 선생과 형제들은 일본에 나라가 빼앗긴 이듬해 임청각을 팔아 독립자금을 마련해 만주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평생 독립에 헌신했다.
망명 직전에는 “공자와 맹자는 시렁 위에 얹어두고 나라를 되찾은 뒤에 읽어도 늦지 않다”며 독립운동에 매진할 것을 다짐했다. 또한 선생은 망명 직전 임청각에 있는 사당으로 올라가 신주와 조상 위패를 땅에 묻고 나라가 독립되기 전에는 절대 귀국하지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다지기도 하였다.
만주 망명길에 오른 2년 뒤인 1913년에는 아들 이준형에게 “조선으로 들어가 임청각을 처분하라”고 하였으며, 그 후 국내로 들어온 아들 이준형이 임청각을 팔겠다고 하자, 문중에서 이를 말리면서 독립운동 자금 500원을 만들어 주기도 하였다.
일제는 1942년 불온한 사람들이 많이 나온 집이라며 중앙선 철도를 집 중간으로 지나도록 건설하고 임청각의 50여 칸 행랑채와 부속 건물을 헐어 버렸다. 헐리기 전에는 루에 올라 바로 강으로 낚싯대를 내릴 수 있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철길을 걷어내고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하는 중이다. 지금은 고택 체험이 가능하다. 한옥의 멋 체험, 호반 나들이길 걷기, 붓글씨 쓰기, 등불 체험, 전통 놀이 체험까지 이곳에서 가능하다. 바로 옆에 법흥사지 칠층 전탑이 우뚝 섰다. 기차가 지나는 진동을 견디고 늠름하게 살아남았다.
낮 동안 여러 체험을 하다가 밤이 오면 월영교로 간다. 낮의 경치도 아름답지만, 야경이 더 멋지다. 다리에 밝혀진 조명과 강에 떠다니는 달 모양의 배의 불빛들로 경치가 한결 곱다. 월영교는 이런 자연 풍광을 드러내는 조형물이지만, 그보다 이 지역에 살았던 이응태 부부의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을 오래도록 기념하고자 했다. 먼저 간 남편을 위해 아내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한 켤레 미투리 모양을 이 다리 모습에 담았다.
나무다리 건너에는 석빙고가 산 중턱에 있다. 낙동강에서 잡은 은어를 임금님께 진상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봄에 벚꽃으로 둘레길을 밝히던 나무가 단풍이 곱게 들었다. 가을에 나들이 장소로 안동댐 일원을 찾아가 보길 바란다.
/김순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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