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경주의 오랜 친구’ 2그루 은행나무

박선유 시민기자
등록일 2023-10-24 16:59 게재일 2023-10-25 12면
스크랩버튼
운곡서원의 은행나무.

경주엔 아주 오래된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다. 보호수로 지정 당시 각각 300살과 330살. 경주의 끝과 끝. 30㎞쯤 떨어진 곳에서 서로의 존재는 아는지 모르는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직 노란빛으로 물들려면 찬바람을 맞을 시간이 좀 더 필요하지만 가을맞이 삼아 이르게 찾아가 보았다. 들녘의 곡식은 이미 누렇게 익어 추수 중이다.

먼저 찾아간 곳은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에 위치한 용산서원(경상북도 기념물 제88호)이다. 용산서원은 조선 중기 충신인 정무공 최진립의 위패를 모시고 향사를 지내는 사액서원이다.


최진립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임진왜란 때 최봉천, 최계종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다. 이후 정유재란과 병자호란에 참전하였으며 병자호란 때 용인에서 전사했다.


서원은 숙종 25년 1699년에 경주부윤 이형상이 이 지역 선비들과 함께 세웠다. 숙종 37년 1711년 ‘숭렬사우’라는 편액을 하사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이후 고종 7년 1711년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으나 1924년 다시 건립되었다. 경주에 위치한 사액서원으로는 용산서원 외에 서악서원, 옥산서원이 있다. 그 앞을 커다란 은행나무가 문지기처럼 우뚝 서서 들고 나가는 이들을 지켜보고 있다.


화려하진 않지만 단단하고 듬직해 보이는 풍체다. 2010년 10월 28일에 보호수로 지정되었다는 표지석이 나무 아래 놓여있다. 수령 300년에 수고 16m, 나무 둘레 1.2m로 기록되어있다. 아직은 잎이 푸르다. 예년에도 그랬지만 높은 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잎은 그다지 풍성해 보이지 않는다. 그 옆에 젊은 은행나무 한 그루가 함께 하고 있다.


다시 차로 35분쯤 달려서 강동면 왕신리에 위치한 운곡서원에 도착했다. 운곡서원은 조선 정조 8년 1784년에 경주향내의 유림과 전국 후손들이 이곳에 추원사를 세우고 안동 권씨 시조이자 고려 개국공신인 권행 선생을 주향으로, 단종의 이모부인 충민공 권산해와 명종 때의 학자인 귀봉 권덕린 공을 배향하다 고종 5년 대원군이 내린 금령으로 서원이 훼철되었다.


대한제국 광무7년 1903년에 다시 단을 쌓고 제향을 봉행하다 1976년에 중창하고 향의에 따라 운곡서원으로 개액을 했다. 나무의 존재감은 스스로가 이곳의 주인공임을 알릴만큼 크고 강렬했다.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 무렵엔 근방으로 진입조차 힘들 만큼 사람들이 몰려든다. 1982년 10월 29일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이곳에서 지내온 시간이 330년. 82년 지정되었으니 40살쯤 더 얹어졌다.


용산서원에서 본 은행나무와는 달리 나무의 높이와 둘레에 대한 설명은 따로 적혀있지 않다. 대략 30미터 쯤 되는 키와 5미터가 넘는 둘레로 짐작해본다. 11월 중후반이 되면 노랗게 익은 잎사귀들이 주변 땅 위를 모두 덮을 만큼 풍성한 숱을 갖고 있다. 나무 아래 앉아 있다 보면 두런두런 옛이야기가 들려올 것 같다. 긴 세월 버텨오며 담고 있는 속내도 많을 터다.


서둘러 찾아온 이는 필자만이 아니었다. 커플들과 가족, 단체 관광객들이 벌써 찾아들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사진을 찍었을 때 유연정이 나오는 위치는 인기가 많다보니 사람 없이 촬영하기란 쉽지 않다. 예년의 경우 11월 10일과 20일 사이가 절정이었다.


찰나의 기적 같은 계절 가을, 오랜 이야기를 품고 있는 경주의 두 은행나무를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박선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사회 기사리스트

더보기 이미지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