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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잖아 다가올 우리의 모습

손정희 시민기자
등록일 2023-12-21 18:24 게재일 2023-12-22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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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벽을 바라보고 있는 박씨 할머니.
청송군 파천면에 사는 아흔 살의 박씨 할머니는 오늘도 혼자서 벽을 보고 누웠다. 한숨소리가 벽을 친다.

11살에 돌림병으로 하루아침에 어린 동생과 둘만 살아남았다. 살던 마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녀와 동생은 친척 집으로 뿔뿔이 헤어졌다. 학교는 고사하고 잔심부름으로 뼈가 굳었다.


16살에 청송으로 시집와, 어려운 살림에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던 그녀. 나름 자식 농사에 성공했다고 자부하셨다. 그러나 최근 몇 해, 아들이 연락이 없다. 외면과 무관심으로 그녀는 한숨만 내쉬고 있다.


천성이 밝아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그녀는 우울감에 빠진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지금까지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다. 고생한 세월을 떠올리며 어디 내놔도 번듯한 아들이라고 자랑했다. 으쓱했던 어깨가 요즘은 움츠려 돌아눕는다. 아무 일 아니라고는 하지만, 입을 다문 그녀를 바라보는 이웃은 마음이 편치 않다. 크게 바라는 것도 아니고 전화 한통화면 벌떡 일어날 일이다. 전화 한 통, 따뜻한 말 한마디면 되는데, 같이 늙어가는 아들에게 그것이 어려울 만큼 어떤 일이 생긴 건가 하는 마음이 든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연시다. 젊은이들은 분주히 사람들을 만나며 바쁜 날들을 보낸다. 이럴 때일수록 외로이 방 한 귀퉁이를 지키는, 할머니와 어르신들은 더욱 쓸쓸해진다. 바쁜 일정 속에 잠시 시간을 내어 ‘어무이 잘 계시니껴? 진지는 잘 챙겨 드시니껴?’라고 전화 한 통만 해 준다면 그동안 얼어붙었던 마음이 눈 녹듯 녹을 것이다. 하지만 야속한 자식들은 오늘도 깜깜무소식이다.


할머니의 외로움, 어르신들의 쓸쓸한 뒷모습은 머잖아 다가올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식들은 이런 사실을 생각도 못 한다.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인 듯 보인다. 돌아누운 할머니의 뒷모습에 이미 일흔이나 된 그 아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지금의 그의 행동을 그의 아들이 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을 일이 생긴 걸까. 할머니의 왜소한 어깨가 장차 다가올 자신의 모습이란 것을 모르는 걸까 생각하면 안타깝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할머니께 따뜻한 사랑의 처방전 ‘어무이, 밥은 드셨니껴, 오늘따라 어무이가 보고 싶어서 전화 했심더.’라고 전화를 한다면, 할머니의 축 처진 어깨가 단번에 펴질 것이다. 아흔 살의 박씨 할머니의 축 처진 어깨를 보면서 ‘내 자식들이 해 주기 바라는 것과 똑같이 네 부모에게 행하라’라던 테스 형의 명언을 떠올려 본다. /손정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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