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흰머리 할머니의 비애(悲哀)

김영주 시민기자
등록일 2023-12-21 18:24 게재일 2023-12-22 12면
스크랩버튼
일명 LA할머니.
“안녕하세요. 그간 잘 지내셨나요?” 예약된 시간보다 조금 늦게 오셨다. 여느 때와는 달리 조금은 무거운 표정이기에, ‘어디가 불편하세요?’ 라고 여쭈었다. 시간 맞추어 집을 나서려니 생리적인 현상으로 긴장감에 변비가 말썽이라 성급히 약국에 가셨다고 한다. 약사에게 증상을 얘기했는데, 빠른 처방을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다른 환자들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맘이 급해 재촉을 했더니, 본인이 더 바쁘니 기다리라고 데퉁스럽게 말했다고 한다. 흰머리 노인이라 업신여기는지 눈물이 날 만큼 맘이 불쾌했다고 하셨다.

미국에서 30년 살다가 한국으로 오셨다기에 일명 LA할머니라고 부른다. 한국은 태어나고 자란 곳이지만, 낯선 땅 낯선 사람들. 어디 한곳에 정 붙일 때가 없다고 하셨다. 나이(연세) 84세. 미국에 있는 아들, 딸이랑 영상통화로 고독을 견디며 따뜻한 가족애를 느끼며 살아간다. 아들이 한국에 나오면 집안의 곳곳에 미루어 두었던 것을 손보고 정리한다고 한다. 거실등 교체, 샤워기 교체, 건전지 교체 등등. 남동생의 부인인 올케가 소개를 시켜 주었고, 가까이 있어서 가끔씩 안부를 한다고 하셨다. 디지털 시대에 대부분의 것들이 자동화기능에 맞추어 살아야 하니 쉽지 않다. 출입할 때 현관 비밀 번호 익히는데 반복연습, 장보기, 산책하기 등 여러 가지 안전을 전수 받았다고 하셨다. 신문화를 받아들이고 혼자 살아가기에는 다소 어설프기는 해도 문제는 없다고 하셨다.


그런데,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 간의 문화 속에서 문제다. 한국인들의 지나친 관심은 오히려 상대를 배려하기 보다는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주기 쉬울 수 있다. 있는 그대로만 봐 주면 좋겠는데, 혀를 차며 이야기보따리를 늘어놓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셨다. 젊은 시절부터 수영을 했었고, 나이가 들어 아쿠아로빅으로 바꾸었다고 하셨다.


홀로 적적(寂寂)해서 경로당에 가면 며느리 흉보기, 아들 자랑, 손자 자랑, 돈 자랑에 귀가 시끄러워 싫다고 하셨다. 젊은이들 속에서 함께 운동 하는 것이 본인의 삶에 에너지가 된다고 하셨다. 흰머리 할머니가 뒷방구석 차지하고 있지 않고 젊은이들 생활 속에서 주책없다고 눈치 줄까 으레 걱정을 하셨다. 티나지 않게 무리 속에 섞여서 함께 운동 하고 싶은 맘뿐이다. 누군가는 가까이 다가와서 “연세가 어떻게 되냐? 대단하시네요”라고, 그 인사는 차라리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고 하셨다.


목욕탕 갈 때에도 본인이 가고 싶은 시간에 못 간다고 하셨다. 빈 공간에 자리를 잡아 앉으면, 힐끗 쳐다보며 옆으로 자리를 이동한다고 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밥하러 가는 시간, 즉 주부들이 집안일로 바쁜 시간을 틈타서 목욕탕에 가신다고 하셨다. 흰머리 할머니가 앉는 것이 냄새나고 싫어 할까봐서이다.


인간은 누구나 세월을 거를 수가 없고, 연습도 반복도 없는 것이 인생이다. 하루해가 빠르게 저물듯 나이는 언제 이렇게 따라 붙었는지? 그들은 아무런 뜻 없이 쳐다볼 수 있지만, 연세 드신 어르신들은 눈치가 보이나 싶기도 할 만큼 살아보지 않아서 시민기자는 안타까움이 더 크다. 눈물을 훔치며, 털어놓으니 속이 시원하다고 하시며 말문을 닫으셨다. 누구나 겪어야 할 길인데. 노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따뜻하고 건강한 이웃이 된다.


/김영주 시민기자

사회 기사리스트

더보기 이미지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