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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가 된 남편… ‘귀농의 단꿈’은 아직도 현재진행형

손정희 시민기자
등록일 2024-01-11 19:49 게재일 2024-01-12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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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파천면 낙원농장 운영 귀농 13년차 <br/>자연과 더불어 자유인으로 사는 삶 만끽
신창영씨가 낙원농장에서 자두나무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
청송군 파천면에서 낙원농장을 운영하는 농부, 한겨울인 오늘도 자두농장을 둘러본다. 농부의 일과는 새벽 일찍 농장을 둘러보는 일로 시작한다. 예년에 비해 포근한 1월, 곧 전지를 시작하려고 마음먹는다. 그는 귀농 13년째인 시민기자의 남편 신창영(65)씨다.

신혼의 단꿈에 젖었던 어느 날 그가 “나이가 들면 고향 청송에 가서 농부로 살겠다.”라고 말했다. 난데없는 폭탄선언에 수줍던 새댁은 거칠게 항의했다. “무슨 소리 하노, 나는 촌에서는 못 산다. 가려면 혼자 가라.” 당황한 그는 그냥 해본 소리라 했다.


우리는 농사철이 되면 주말마다 형님을 도우러 청송으로 갔다. 하지도 못하는 일이었지만 열심히 일하고 먹는 참과 점심은 꿀맛이었다. 금방 뜯어 온 나물에 된장을 넣어 쓱쓱 비벼 먹는 밥상에 반했다. 무청의 푸른 잎에, 들판의 모든 푸른 것에 빠져들었다. 결국 나이 들면 시골 와서 살자고, 된장·간장을 직접 만들고 산으로 들로 나물 캐러 다니며 살고 싶다고, 내가 먼저 말해 버렸다.


형님의 주선으로 땅을 사고 촌집도 샀다. 블루베리를 심어 부농을 이루겠다던 꿈은 자두로 종목을 변경했다. 그해 3월 자두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3년 뒤 아직은 직장을 다녀야 할 나이에 그가 청송으로 떠나버렸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귀농은 남은 가족에겐 황당한 일이었다. 농장이 자리 잡기까지 맞벌이를 하기로 했다.


삼 년만이라던 시간이 십 년이 걸렸다. 이제 풍족하지 않아도 부족함 없이 산다. 농장의 소득만으로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서로가 자유롭게 살다가 갑자기 합가하기는 남편과 나, 모두에게 아쉬움이 남았다. 아직은 직장의 끈도 남아 있어 대구에서 3일, 시골에서 4일 살기로 했다.


내가 청송에 오는 날은 남편이 쉬는 날이다. 덩달아 나도 농부의 아내로 농사일을 거드는 일은 어쩌다 한 번씩이다. 귀농 12년이 지난, 청송 주민인 내가 청송에 오는 날은 항상 휴가 오는 기분이다. 이제는 시골 아낙네가 되어있어야 할 만도 한데 아직도 휴가 온 손님처럼 지내다 대구로 떠난다. 자상한 남편은 나의 청송 도착에 맞추어 회덮밥, 매운탕, 국수 등을 해놓고 기다린다.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은가 보다. 공들인 밥상에서 행복하게 먹는 상대를 보면 안 먹어도 배부른 기분이 우리 둘 다 같다.


봄의 시골은 냉이부터 쑥, 등 나물이 지천이다.


농장 일 하는 남편 옆에서 일은 돕지 않고 냉이와 쑥을 캔다. 우리 가족의 1년 보약을 캔다. 좀 더 해서 친한 이웃에게 나눠 주는 재미도 쏠쏠하다. 몇 시간을 공들여 나물을 캘 때면 선물을 받고 행복해하는 이웃을 떠올리며 혼자서 실실 웃는다. 텃밭 가에 심어 놓은 어수리, 부들부들 딱 먹기 좋게 커서 바구니 가득 뜯어온다. 나물 다듬기 선수인 남편과 어수리를 다듬으며 귀한 것은 나눠 먹어야 한다며 몇 봉지 나눠 담는다. 어수리, 머구 잎, 신냉이, 고사리 조금, 된장에 무치고, 간장과 소금에 무치고 향긋한 봄나물 반찬들. 한겨울에 봄날의 풍경을 떠올리며 미소 짓는다.


농부가 된 남편, 젊었을 때는 어림없는 소리라 펄쩍 뛰었는데 돌아보니 참 잘한 결정이었다. 한창 일할 나이에 직장에서 은퇴하고 하는 일 없이 지내는 친구들도 있다고 한다. 남편의 경우는 알맞은 나이에 잘 결정하여 농부로 자리잡았다. 하고 싶은 운동으로 건강을 지키고 여가를 즐기면서 자유인으로 사는 삶, 행복이 뭐 별건가. 이렇게 기분 좋게 자연과 더불어 오순도순 살아가는 것이 행복 아닌가 싶다. /손정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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