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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글로 즐기는 ‘예술놀이’

서영희 시민기자
등록일 2024-01-11 19:49 게재일 2024-01-12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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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이다. 지난해 여름 리더십 강의를 통해서 인연을 맺은, 박채연 강사의 초대로 강연회에 갔다. 냉쾌한 가을바람을 느끼며 한적한 황리단길을 가로 질러서 문화센터에 도착했다. 평소 강연회가 있다는 소문을 따라 여기저기 쫒아 다닐만큼 강연회에 목이 말랐던터라, 문화재 답사와 겹치는 날임에도 주저없이 이쪽을 택했다.

제일 먼저 도착해서 자리를 잡고 앉으니 강의 제목이 눈길을 끈다.


‘그림과 글이 만나는 예술수업’.


그림도 글도 내겐 쉽지않은 분야인데, 둘이 만나면 어떤 상황이 연출되는 것인지 궁금증이 일었다. ‘그림과 글이 만나는 수업’의 저자 임지영 강사의 강연은, 재미있고 독특했다. 무엇보다도 수강자 모두가 강연의 적극적인 참여자가 되어, 자신을 목소리 낼 수 있음이 흥미로웠다. 특히 강연중에 강조한 ‘예술을 다양하게 이용하는 법’은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강사가 말해 준 방법은 다음과 같다.


“자신에게 특별하다고 느껴지는 그림 앞에 서서 조금 오래 천천히 응시하라. 가까이서도 보고 조금 떨어져서도 보고, 그림 중간에서부터 시작해서 네 귀퉁이까지 꼼꼼하게 보라. 그러다가 그림속으로 자신이 쑥 들어가 보기도 해라. 그 이후에 그림 그린 이의 마음을 찬찬히 생각해 보라.”


강사는 우리에게 여러 편의 그림을 다양한 각도에서 설명해 주었고, 14명의 수강자 모두에게 하나의 미션을 주었다. 박재웅의 ‘황혼’이라는 그림을 3분 정도 응시한 후에 그 그림에 대한 자신의 감성과 서사를 글로 표현하라는 것이었다. 석양이 아름답게 물들고 있는 들길에서 구부정한 뒷모습의 노부부가 손을 잡고 노을을 향해 걷고 있는 그림<사진>이었다.


10분 후 강사는 수강자의 글을 하나하나 읽도록 했는데, 글 하나하나가 놀라울 만큼 감동적이었다. 같은 그림을 감상하고 제각기 느낀 감성도 특별했고, 짧은시간에도 불구하고, 그림에서 끌어낸 애틋한 서사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지금 셋째 아이를 임신중이라는 수강자는 그림을 보면서 요즘 부쩍 싸움이 잦았던 남편을 떠올리게 됐다며, 글을 읽는 내내 울먹여서 가슴이 먹먹하기도 했다.


고흐의 ‘밤의 카페테라스’
고흐의 ‘밤의 카페테라스’

어떤 수강자는 손잡고 걷는 노부부의 뒷모습에서 자기부부의 외롭지 않을 노후를 봤고, 또다른 수강자는 자기 부모님의 모습을 그림속에서 만났다며 들길의 끝 지점에 노부부를 기다리고 있을 아늑한 집과 가족이 보인다고도 했다.

신기했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그림을 매개로 자신도 몰랐던 내면의 감성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경험이었다. 같이 수강했던 후배 역시 놀라워했다. 나는 가족모임에서 도록을 활용해 이 특별한 경험을 이어가려한다. 신기했던 것은 6살아이부터 80대 할머니까지 세대를 넘나들어 흥미있는 예술놀이가 된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 그림이 글로 표현되고 있었고, 우리는 그림을 가지고 놀며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었다. 그림과 글이 더이상 어렵고 낯설지가 않았다. ‘그림앞에서 쫄지말고 담대해져라’, 라는 강사의 조언이 크게 와 닿았다.


이젠 그림에 대한 거리감이 마법처럼 좁혀져서 생활속의 그림에 스스로 다가가 쉽게 스토리텔링을 하곤한다.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고흐의 ‘밤의 카페테라스’속에서 멋진 드레스를 입고 카페에 앉아있는 나를 본다.


아이들의 겨울방학 동안 온 가족이 둘러앉아 그림과 글을 통해서 예술놀이를 해 보는 건 어떨까? 어쩌면 그 놀이를 통해서 가까운 사람들의 속뜻을 엿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서영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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