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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생러’

박귀상 시민기자
등록일 2024-01-18 18:29 게재일 2024-01-19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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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기원 감포 앞바다에 모인 사람들<br/>새해 좋은기운 가득 해돋이 소원 빌어
문무대왕릉 앞바다에서 소원을 비는 시민들.
새벽에 집을 나서 문무왕릉이 있는 감포 앞바다로 향했다. 새해 첫날 날씨 탓에 보지 못했던 해돋이를 보기 위해서이다. 어스름 바닷가에 망원렌즈 달린 카메라 여러 대가 삼발이에 의지해 이미 붉게 물들기 시작한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엇을 얻기 위해, 무엇을 소원하기 위해 이들은 새해부터 새벽잠을 설치는가? 삶의 목적은 행복에 있고 행복은 마음의 평안에서 오고 마음의 평안은 본능을 잘 다스림에 있다.

절로 생겨나는 마음과 감정(心情)을 두고 본성이라 이른다. 고(故) 박경리 선생은 본능이 어디서 생겨나는지 그 근원을 증명하기 힘들다고 했다. 자연과 동물은 본능에 충실하며 살고 인간은 그 본능을 다스리며 살아간다. 그러나 이성이 본능을 이기기란 쉽지 않다. 소학 가언(嘉言)편에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싫어한다(勝己者厭之).’는 말이 나온다. 질투심은 본능이고 그 본능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진다.


이사(李斯)와 한비자(韓非子)는 순자(荀子)의 수제자로 동문수학했다. 이사는 달변가였고 한비자는 말더듬이였지만 학문에 있어서는 한비자에 미치지 못해 늘 시기심이 있었다. 전국시대(戰國時代)를 통일한 진시황제에게 먼저 다가간 이사는 그 명석함으로 법치주의 기반을 확립하며 재상에 오르고, 진시황제가 한비자 저서인 고분(孤憤)과 오두(五<8839>)에 감명 받아 한비자를 곁에 두고 싶어 하니 자기보다 더 총애 받을 것을 질투해 모함으로 감옥에 가둔 뒤 독살시킨다. 이후 시황제가 죽자 지록위마(指鹿爲馬)로 유명한 환관 조고를 도와 유언장을 조작하여 태자 부소를 자결케 하고 막내아들 호해를 2세 황제로 즉위시키니 결국 조고의 모략으로 요참(腰斬) 형을 당하며 삼족이 멸문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삼국사기 저자 김부식은 당대 시(詩)와 문(文)의 명성으로 쌍벽을 이루었던 정지상을 질투했다. 고려전기 한시문학을 주도했던 시인 정지상은 묘청의 난에 연좌되어 김부식에게 죽임을 당한다.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은 아버지의 보호아래 무신(武臣)들을 업신여김이 극에 달해 연로한 무신 정중부의 수염을 태우는 등 도를 넘는 그의 무례함으로 인해 결국 무신들이 문신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는 무신정변(武臣政變)이 일어난다. 김돈중과 동생 김돈시는 무신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이미 죽은 김부식은 부관참시 형에 처해진다. 이규보는 ‘백운소설’에 김부식이 자기에 의해 피살되어 음귀가 된 정지상에 의해 죽었다는 일화를 실었다.


죽마고우였던 관중과 포숙아. 관중은 친구였던 포숙아가 위기 때마다 배려와 도움으로 힘이 되어 준 것에 감사한다. 질투가 아닌 깊은 신뢰로 우정을 다졌던 그들은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사자성어를 남긴다.


질투는 여자들의 몫이 아니다. 남녀 구별이 없다. 애완견, 애완묘도 질투를 한다. 본능이다. ‘나보다 나은 사람을 싫어하는’ 본능을 ‘나보다 나은 사람을 본받을 수 있는’ 이성으로 잘 다스려 새해도 행복으로 채우자.


‘갓생러’는 God+人生이 합쳐진 신조어다. 손에 닿지 않는 화려한 삶을 추구하기보다 작은 일에 도전과 성실로 소소한 성공을 맛보며 행복을 만끽하는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을 말한다. 불행은 비교에서 시작된다는 명언이 있지 않은가. 좋은 기운 가득한 희망담은 붉은 해가 문무대왕릉 앞바다에 떠오르고 쏟아지는 카메라 셔터 음을 들으며 사람들은 갑진년 한해도 행복하기를 기원한다. 나는 조용히 ‘갓생러’를 외친다.


/박귀상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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