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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가 만드는 김장놀이 풍경

서영희 시민기자
등록일 2024-01-18 18:29 게재일 2024-01-19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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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이번 겨울 들어 두 번째 김장을 하면서 기념촬영 했다.
“어머니 요번 김장은 오는 주말에 할까요? 이번 수육은 삼겹으로 저희가 사갈게요. 저번 사태는 좀 텁텁 했지요?”

“할머니, 이번엔 새얀이가 가서 김치 만들꺼니까 저번처럼 먼저 해 놓지 마세요.”


며느리와 여섯살 손녀의 김장부심이 전화기 너머에서 쨍쨍하게 전해진다. 최근 수년 동안 김치를 직접 담가 먹는 가구의 비중이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고 하는데, 우리 가족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다.


몇 년 전 아들이 결혼을 하고, 마침 남편이 시골로 발령받으면서 하던 일을 줄이고 남편을 따라 시골살이를 하게 됐다. 그때 이웃들이 나눠주는 배추로 김치를 어설프게 담가 본 것이 우리 가족 김장의 시작이다. 처음엔 배추를 베란다에 쌓아두고 조금씩 여러 번 나누어서 했다. 제대로 김치를 만들 자신도 없거니와 협소한 관사의 사정상 일을 크게 벌일 수도 없었다. 그러던 것을 다음 해부터 아들 내외가 참여하기 시작했고, 이젠 여섯 살 손녀까지 적극 가담한다.


작년에 경주로 이사를 와 이젠 배추를 나눠주는 이웃도 없는데, 어찌된 건지 아들 내외는 김장에 더 적극적이다. 지난 주말에는 이번 겨울 들어 두 번째 김장을 했다.


이번엔 김치냉장고까지 장만한 며느리가 가족의 김장놀이 지휘자 노릇을 한다. 김장 날짜며, 역할 배정이며, 김장 후 막걸리, 수육 파티의 디테일까지 계획한다.


물론 신선한 재료 구입 및 배추 절임 후 세척은 나와 남편의 몫이다.


지난달 첫 김장 때는 아들의 직장일로 약속시간 보다 늦어지기에 남편과 내가 미리 양념을 버무렸더니, 많이 서운했던 손녀가 이번엔 전화로 단단히 다짐을 받는다. 밝고 에너지 넘치는 며느리의 진두지휘 아래 식탁에 옹기종기 둘러서서 김치를 만들며 느끼는 행복감은 그야말로 덤이다. 손녀는 유치원에서 김장하는 법을 제대로 배운듯이, 아는 척을 하며 커다란 비닐장갑 속 조그만 손을 꼬물거리며 양념을 버무린다. 우리 가족 삼대의 김장하는 날 풍경이다.


현대 소비자의 편의성 추구와 1인 가구의 증가로 인해 집에서 아예 김치를 먹지 않는 가구도 많다고 한다. 물론 사 먹는 김치도 맛이 있고, 어떤 면에서는 가성비 또한 좋을 것이다 그러나, 다 같이 모여서 만든 음식이 매개가 되어 세대간의 소통을 단단히 이어준다면 어떨까? 그 시간을 통해서 할아버지와 손녀의 소중한 추억이 만들어지고, 고부간의 따뜻한 서사도 쌓이지 않을까?


김장 후 수육 파티에서 며느리는 벌써 설날 음식을 계획한다. 자기는 언제나처럼 잡채랑 오색나물을 해 온다고 하니 난 이번에도 온 가족이 좋아하는 소고기무국을 한 솥 가득 끓여야겠다. /서영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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