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치매 10년 째… 엄마와 함께 한 하루”

김영주 시민기자
등록일 2024-01-25 19:11 게재일 2024-01-26 12면
스크랩버튼

“엄마, 보일러 끄지 말고 따뜻하게 주무셔.”

이불을 당겨 엄마의 무릎을 덮어준다. 내일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는 나는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긴다. 언제나 그랬듯이 자고 가라는 엄마의 말을 뒤로 하고 차의 시동을 건다. 엄마는 또 담벼락에 기대어 섰다. 30분이나 두 손 잡고 잘 있으라고 인사도 했는데 딸을 보내는 엄마의 인사가 길다. 마을을 벗어나자 가방이 놓인 조수석에 귤 한 개가 보인다.


엄마는 치매 10년째. 서너 살 먹은 아기 같은 모습과 행동을 한다. 치매는 인지능력 저하와 기억력 상실을 넘어서 일상생활에 불편을 초래했다. 주중에는 도우미의 보살핌으로 생활하고, 주말에는 4남매가 돌아가면서 당번을 정해서 보살피고 있다. 엄마가 좋아하는 먹을거리도 많은 양을 사 드릴 수가 없는 것이 슬프다.


한꺼번에 다 드시는 것이 문제다. 당뇨가 있는 엄마는 혈당의 수치가 올라가면 합병증이 오고, 고혈압으로 늘 걱정이 많다. 거실 벽에 숫자가 크게 적힌 달력이 있다. 약봉지를 붙여 놓고 날마다 떼어 드시도록 한다. 그렇게 약의 효능과 기억력 되찾는 가족의 사랑으로 세월을 이기고 있다.


나는 헤어디자이너다. 내가 당번이면 염색약, 파마 약, 가위 등을 챙긴다. 햇살 좋은 마당에 앉아 엄마와 미용실 놀이를 한다. 일부러 빨강, 노랑, 초록 등 형형색색의 여러 가지 롯드를 준비한다. 엄마에게 내가 부르는 색깔을 집어 달라고 하면 엄마는 놀이하듯이 찾아준다. 파지와 고무줄을 받아 롯드를 번갈아 파마를 하며, 먼 옛날 엄마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엄마 집에서 파마를 하고 있는 모습.
엄마 집에서 파마를 하고 있는 모습.

목욕탕에도 갔다. 엄마의 옷을 넣어 둔 로커 번호는 86번. 엄마의 나이를 기억하라고 그 번호를 골라 옷을 넣고 문을 잠궜다. 목욕을 마친 후 그 번호가 있는 통로를 가리켜 주며 엄마에게 86번을 찾아 옷을 입으라고 했다. 선풍기 앞에서 머리를 말리고 있는데 엄마의 소리가 들렸다. “이거 어째 하는교?” 지나가는 아줌마에게 묻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눈으로 신호를 보내며 낮은 목소리로 엄마가 치매라고 했다. 그녀는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다. 엄마는 로커에 숫자와 열쇠에 적힌 숫자가 같은 것을 찾아냈다는 것에 웃는다. 열쇠를 꽂아 문을 열어야 하는데, 구멍 맞추는 것이 어렵다. 한참을 맞추시더니 어찌 문이 열렸다. 기운이 없다며 통로에 퍼질러 앉았다. 옷가지들을 하나씩 입으라고 했다. 온천욕에 땀이나 옷 입기가 쉽지는 않다. 엄마가 옷 입은 모습은 영락없는 아기모습이다. 속내복이 겉 바지 보다 빠지듯이 입고는 다 입었다고 속이 답답하다고 나가자고 재촉한다. 보리차 물부터 한입 마시게 했다. 외투를 걸치고 단추를 채워 목욕탕을 나섰다. 엄마가 좋아하는 들깨 칼국수 한 그릇 먹고 집으로 왔다. 엄마의 모습보다 내 마음이 더 개운하다. 엄마랑 함께 했던 오늘 하루가 저물어간다.

길가에 차를 세워서 한참을 울었다. “올 때는 좋은데, 갈 때는….” 엄마의 말이 귀를 울린다. 떠나는 길모퉁이 담벼락에 서서 지켜보던 엄마를 다시 보기 위해 차를 돌렸다. 한 개 남은 귤을 엄마에게 주고 와야지. 골목을 들어서자 엄마는 이제야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차문을 열고 “엄마 귤!” 하며 엄마의 손을 잡았다. 엄마는 다시 귤을 내게 떠밀었다. 몇 번이나 오간 귤은 손톱에 스쳐 껍질이 다 까지고, 엄마가 활짝 웃고 있다.


/김영주 시민기자

사회 기사리스트

더보기 이미지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