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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가득했던 ‘어머니의 시간’과 만나 볼까요

백소애 시민기자
등록일 2024-01-30 18:01 게재일 2024-01-31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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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시 한글배달교실 문해시화전 
안동역에서 문해시화전이 열리고 있다.
“글 모를 때는 허리 아플 때 가는 곳/글 배우고 나니 삼성병원//글 모를 때는 그냥 큰 건물/글 배우고 나니 롯데호텔//글 모를 때는 떡 하는 집/글 배우고 나니 대동방앗간//글 배우고 나니/모두 이름이 있네.”

이 시는 전국 성인문해 시화전에서 글아름상(국회교육위원장상)을 수상한 안동시 임동면에 사는 김남출 어르신의 ‘모두 이름이 있네’이다.


글을 모르던 어머니들의 시간은 이제 글을 아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버스 노선을 읽고 간판을 읽고 이름을 쓸 줄 알게 된 것이다. 계모임으로 갔던 식당집의 메뉴를 읽고 미스터 트롯 임영웅의 이름 석 자도 쓰고 은행 창구에서 사인도 할 줄 알게 되었다. 자식 많은 집 몇째로 태어나 촌살림에 일찍 보탬이 되어야 하는 운명으로 살아왔던 어머니들의 고단한 삶은, 글을 깨치고 책을 볼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자식들 다 키우고 나서야 마을회관에 찾아오는 한글배달교실에서 ‘가나다라’를 배우게 됐다.


‘안동시 찾아가는 한글배달교실’은 안동시와 한국수자원공사, 안동시평생교육지도자협의회가 협약을 통해 15개 읍면 지역의 어르신들께 한글을 가르치는 평생학습사업으로, 2014년부터 운영되고 있으며 그간 1천995명의 수료생을 배출하였다.


이들의 시는 진솔한 경험에서 나온 현대판 ‘내방가사’이다. 고된 시집살이와 공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던 시대를 살아온 어머니들의 일기이자 삶의 기록이다. 중학생 때 수학여행비 삼천 원이 없어 못 준다 하니 콩밭에서 울던 큰딸에게 미안했던 기억, 아픈 아들 병간호로 밤 기차로 서울에 다녀왔다 갈 데가 없어 안동병원 의자에서 밤을 새웠던 기억, 스물에 시집왔더니 군대 간 남편, 밤낮으로 길쌈하여 자식 키운 그리운 엄마를 한 시간 만이라도 만나고 싶다는 애절한 사연엔 그만 눈시울이 붉어진다.


“쪽두리 쓰고 나니/새댁이//아기 낳고 나니/숙이 엄마//손자 태어나니/할머니//한글교실에서/김복연.”(김복연 ‘내 이름’)


무학(無學)으로 어린 시절 학교에서 불리지 못했던 이름을 비로소 불리게 된 7학년 8학년 어르신들의 기쁨과 가슴 절절한 글이 가득하다. 이들이 정성껏 쓴 글을 모은 안동시 찾아가는 한글배달교실 문해시화전 ‘어머니의 시간’은 2월 12일까지 안동역에서 열린다. 정성껏 눌러쓴 손글씨와 알록달록 색칠한 시화 앞에서 시민들은 때론 웃음을, 때론 눈물짓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백소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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